[핵폐기장 신청 위도는 지금…]“오죽하면 核쓰레기장을…”

  • 입력 2003년 7월 17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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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로 단독 신청한 전북 부안군 위도(蝟島)는 16일 오후 안개에 휩싸인 채 적막감이 흘렀다. 위도는 섬의 생김새가 고슴도치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1993년 292명이 숨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섬에서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환영하거나 반대하는 플래카드나 깃발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육지의 부안군에서 연일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주민들도 처리장 유치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가급적 말을 아꼈다. 부두에서 어구를 손질하던 60대 어민은 “오죽하면 핵 쓰레기라도 받으려고 하겠느냐”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는 “위도 사람 중 요즘 잠을 편히 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로 단독 신청한 전북 부안군 위도(蝟島)는 16일 오후 안개에 휩싸인 채 적막감이 흘렀다.

위도는 섬의 생김새가 고슴도치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1993년 292명이 숨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섬에서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환영하거나 반대하는 플래카드나 깃발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육지의 부안군에서 연일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주민들도 처리장 유치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가급적 말을 아꼈다.

부두에서 어구를 손질하던 60대 어민은 “오죽하면 핵 쓰레기라도 받으려고 하겠느냐”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는 “위도 사람 중 요즘 잠을 편히 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리장 유치에 90% 이상 찬성했던 주민들은 보상을 기대하면서도 정부가 약속을 제대로 지킬지, 결국 삶의 터전인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 불안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주민들의 소외감=위도 주민들은 처리장을 유치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은 ‘소외감’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새만금 방조제와 전남 영광군 원자력발전소에서 각각 20km 남짓 떨어져 있는 위도는 방조제 공사와 원전 가동으로 피해만 보고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우선 영광원전이 6호기까지 가동되면서 원전에서 냉각수로 사용한 온(溫)배수가 바다의 수온을 상승시켜 어획량이 크게 줄었지만 피해보상 대상지역(17km까지) 밖이라는 이유로 원전측에 수십차례나 진정을 했는데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

새만금 방조제 축조로 물길이 바뀌고 토사가 쌓이면서 어획량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사업 초기 간접보상 명목으로 가구당 수십만원을 받은 게 전부다.

유치추진위 정영복(鄭永福·51) 위원장은 “새만금 사업과 영광원전 사업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이 계속 피해만 보고 보상에서 제외된 데다 당국도 위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소외감을 느껴 왔다”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우리가 주도적으로 유치하자는 움직임이 일게 됐다”고 말했다.

유치추진위원들은 보상금 외에 처리장 건설과정에서의 고용창출과 복지문화 시설 확충 등에 대한 기대감도 나타냈다.

▽짓누르는 빚더미=대부분 농어촌의 부채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위도 사람들이 안고 있는 빚더미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대부분 가구당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의 빚을 수협이나 농협에 지고 있으며 사채를 쓰는 주민도 많다는 것.

위도 치도리 주민 조정란씨(53·여)는 “섬 부근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서 먼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배의 규모를 크게 해야 하는 데다 인건비와 기름값은 계속 인상되고 있다”며 “그런데도 생선값은 오르지 않아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얻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보상금을 타게 되면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젊은 사람들은 빚을 갚고 육지로 떠나고 노인들만 어쩔 수 없이 남게 될 것”이라며 “확실한 직접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쳐 사업 착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큰소리 못내는 유치 반대=생존권 차원의 유치 찬성 의견이 많다보니 반대 목소리는 설자리가 거의 없다.

거의 유일하게 공개적인 유치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주민 서대석(徐大錫·52)씨는 “주민들이 가구당 3억∼5억원의 직접 보상을 받을 걸로 기대하고 있지만 그 같은 직접보상은 법을 고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펜션을 운영 중인 그는 “주민들이 핵의 위험성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이며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주민들의 보상에 대한 기대가 깨지고 나면 그 이후가 더 큰 문제”라고 안타까워했다.

위도는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이후 종합개발계획이 수립돼 지금까지 400억원을 들여 우회도로를 완공했고 상수도와 전기가 들어오는 등 외형적인 생활 여건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나아졌고 관광객도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

그렇다 보니 민박이나 낚싯배 등 관광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심 유치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전북 부안군 격포항에서 14.4km(배로 45분) 떨어진 면적 428만평의 전북에서 가장 큰 섬이다. 현재 672가구 1468명이 거주하며 대부분 어업과 소규모 농업, 관광객을 상대로 한 민박과 낚싯배 운영 등으로 생활한다.

위도=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위도 핵폐기장 어떤 시설▼

방사성 폐기물은 원자력을 이용하면서 나오는 각종 쓰레기로 매우 해로운 방사능을 지니고 있다. 이 폐기물을 저장하는 시설이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다.

방사성 폐기물은 방사능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고준위, 중준위 및 저준위 폐기물로 나뉜다. 원자력발전에 사용한 ‘사용 후 핵연료’가 가장 방사능이 높은 고준위 폐기물이며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했던 부품, 작업복, 휴지, 장갑 등은 대부분 중저준위 폐기물이다. 이번에 건설되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중저준위 폐기물을 영구 처분하고 고준위 폐기물은 국가 정책이 결정될 때까지 중간 저장하는 시설이다.

현재 국내에서 방사성 폐기물은 원자력발전소나 대전 원자력환경기술원 내 임시저장고에 보관돼 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완공되면 이들 폐기물을 모두 모아 한곳에 저장한다. 처리장은 방사성 물질이나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되지 않도록 여러 겹으로 된 저장시설을 만들어 폐기물을 보관한다.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에는 세계적으로 천층 처분 방식과 동굴 처분 방식이 사용된다. 천층 처분 방식은 땅을 얕게 판 뒤 콘크리트로 벽과 바닥, 천장을 만들고 그 안에 폐기물이 들어 있는 드럼통을 보관하는 것이다. 동굴 방식은 땅속의 커다란 바위에 동굴을 뚫어 그 속에 폐기물 드럼통을 묻는 방식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천층 방식을, 스웨덴 독일 핀란드가 동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은 지하 500∼1000m 깊이의 암반에 처분시설을 만들어 보관하는 방식을 기본개념으로 하고 있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건설된 곳은 없다. 한국은 최종 부지 선정 후 지형 특성에 따라 처분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다.

방사성 폐기물이 누출되면 환경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처리장은 매우 안전한 장소에 건설돼야 한다. 정부는 94년 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를 폐기장으로 지정했으나 세부 부지 조사에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이 발견돼 지정이 취소됐다. 위도 역시 안전성이 가장 큰 문제로 정밀 지질조사를 앞두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사전 지질조사에서 위도 주변에 시추공을 5, 6군데 뚫어 조사를 했기 때문에 활성단층이 발견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부장은 “겨우 열흘에 걸쳐 이뤄진 사전 조사로 활성단층 여부를 가리는 것은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처리장은 사실상 고준위 폐기물을 오랫동안 저장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정밀 조사를 거쳐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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