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취업 25만명시대中]3D업계 "외국근로자가 숨통"

  • 입력 2002년 5월 28일 18시 50분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포장재를 생산하는 H사. 최근 경기가 풀리면서 주문량이 평소보다 30%가량 늘었다. 이 회사 L사장은 직원 8명으로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5명을 더 뽑으려 했으나 간신히 2명만 구할 수 있었다. 그나마 2명 모두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인.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서 운동기구를 제조하는 J사는 직원 10명을 충원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회사 앞에 현수막을 내걸고 인터넷에 채용공고를 띄웠지만 지원자는 거의 없다.

H사와 J사는 그래도 사정이 좋은 편이다. 이른바 3D 업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산업연수생들도 취업을 기피하는 탓에 불법 취업자라도 없으면 당장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글 싣는 순서▼

- <上>“비인간적 대우 이젠 못참아요”

경기가 바닥을 헤매던 작년 6월 중소기업청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인원 부족률은 종업원 수 5∼19인 사업장이 10.9%, 20∼49인 사업장이 6.4%, 50∼99인 사업장이 4.6%, 100∼299인 사업장이 2.1% 등으로 나타났다. 유광수(柳光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연수총괄부장은 “경기가 회복된 올해의 구인난은 작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구인난이 심각하다 보니 ‘임금이 싸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다’는 말은 사치로 통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달 1286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4곳 중 3곳은 “한국인 근로자를 구할 수 없어서 외국인을 고용한다”고 응답했다. “임금이 싸서 고용한다”는 대답은 17%에 그쳤다.

실제로 간접비용과 생산성을 감안하면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은 싼 편이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숙박비를 포함한 외국인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한국인 근로자의 83.3% 수준이지만 생산성은 한국인 근로자의 76.4%에 불과하다.

중소기업들은 생산라인을 세우지 않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산업연수생과 불법 취업자를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산업연수생은 정부가 쿼터를 엄격하게 제한, 평균 4 대 1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채용할 수 있다. 불법 취업자에 대한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시화공단의 금속업체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인 A씨는 “야근과 잔업을 열심히 하면 월 120만원을 받는다”면서 “힘들어도 좋으니 한국에 계속 있고 싶다”고 말했다.

야근과 잔업수당을 제외해도 A씨의 월급은 70만원으로 인도네시아 평균 임금 10만8000원의 6.5배에 달한다. 몽골은 격차가 평균 14.2배, 중국은 6.0배에 이른다.

불법 취업자들이 일부 악덕 사업주를 만나 인권을 유린당하고 임금 체불을 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한국에 남아있기를 원하는 이유는 이런 경제적 유혹 때문이다.

한국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하는 나라로 꼽힌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해 9월 외국인 근로자 11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선호국 1순위로 한국을 든 응답자가 66.4%였다. 이어 일본 13.0%, 미국 9.0%, 대만 3.0% 등의 순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불법 취업자를 없애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유동길(柳東吉) 숭실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요와 공급이 있다는 이유로 불법 취업과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유 교수가 말한 원칙에는 정부나 경제계도 동의한다. 문제는 해법을 놓고 경제논리와 인권논리, 단기적 이해와 장기적 이해, 명분과 실리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부와 인권단체 등은 외국인 근로자도 한국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고용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사실상의 고용을 연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편법이라는 것.

반면 중소기업계는 고용허가제를 하면 연수생 1인당 인건비 부담이 월 평균 37만원가량 늘고 노조 결성으로 인한 노사 갈등이 생겨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대신불법 취업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산업연수생 쿼터를 크게 늘려달라고 요구한다.

기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주5일 근무제를 강행하고 산업기능요원을 줄이기로 하는 등 인력난을 심화시켜 외국인 근로자 불법 고용에 대한 수요를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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