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항 30돌]초라한 쌍발機서 어느새 세계의 날개

  • 입력 1999년 3월 1일 20시 04분


30년전 대한항공 여승무원들은 주력기종인 DC3 등 프로펠러기에 탑승할 때마다 긴장했다. 태백산맥 상공에서 하강기류를 만날 때면 기체가 크게 흔들리는 데다 통로도 좁아 여차하면 손님에게 무례를 저지르곤 했기 때문. 대한항공이 가진 유일한 제트기였던 DC9기마저 일본 오사카(大阪) 상공에서 고장을 일으켜 정비고 신세를 지던 시절이었다.

69년 3월1일부터 시작된 대한항공의 30년은 우리나라 민항30년의 역사이기도 하다. 당시 정부(대한항공공사)로부터 넘겨받은 항공기는 제트기 1대와 구형 프로펠러기 등 모두 8대. 편대를 지어 실어날라도 B747 점보기 1대 수준인 4백석 규모를 넘지 못했다. 연매출은 동남아 최하위권인 17억원대.

그래도 항공기 승무원은 ‘외국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민항 출범 1년만인 70년 B707기를 타고 처음으로 홍콩공항에 내릴 때엔 승무원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꾸게 해 준 서울∼로스앤젤레스간 미주노선이 열린 것은 72년 4월.

80년대 들어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민항기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양산해냈다. 기내에 신발을 벗어들고 타는 촌노(村老), 창가자리를 잡기위해 출국심사대에서부터 뛰는 학생,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는 것은 예사였다.

71년 속초발 서울행 F27기는 납북 기도 괴한이 터뜨린 수류탄으로 객실바닥에 지름 2m의 구멍이 뚫려 기장이 동해안 명태건조장에 동체착륙, 승객의 목숨을 지켰다. 파리발 서울행 B707기가 옛소련 무르만스크 얼음호수에 곡예 비행하듯 착륙, 세계적인 조종능력을 입증했던 것은 78년의 일. 92년 정년퇴직한 김양욱수석기장은 4개 엔진중 2개가 고장난 상황에서 태평양을 횡단하는 전설같은 뚝심을 후배기장에게 남겼다. 대한항공 사사(社史)30년에 나타난 사건들이다.

‘한강의 기적’에 힘입어 사세를 꾸준히 늘려온 대한항공은 이제 세계 11위의 항공사로 떠올랐다. B747―400 B777 A330 등 1백11대의 항공기를 보유, 좌석공급 능력이 2만5천4백17석으로 늘었다. 출범 당시의 64배 규모. 30년간 탑승객은 무려 2억5천7백3만명. 한국인 모두가 평균 5.7회씩 비행기를 탄 셈. 화물수송 분야에선 이미 세계 두번째 메이저로 부상했다.

대한항공은 IMF한파 속에서도 급여는 낮췄지만 사람은 줄이지 않았다. 낡은 비행기를 팔아 은행빚을 갚으면서 국내최초로 민간비행장(제주)과 항공기 도장(塗裝)시설(부산)을 마련하기도 했다.

조양호(趙亮鎬)대한항공 사장은 민항 30돌째인 올해를 ‘선도 항공사로의 재도약 원년’으로 선포하고 “2000년 초까지 1백3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세계 7위권의 항공사로 발돋움하겠다”는 비전을 창사기념일인 1일 발표했다.

〈박래정·김종래기자〉jongra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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