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모양의 초승달 아직 반달은 아니지만, 또렷하게 푸른 하늘가에 걸려 있구나.사람들이여, 눈썹 같은 초승달 작다 마시라. 보름날 둥글어지면 온 천지 비출지니. (初月如弓未上弦, 分明掛在碧소邊. 時人莫道蛾眉小, 三五團圓照滿天.)― ‘초승달을 노래하다(부신월·賦新月)’ 무씨의 아들(무씨자…
근심이라곤 모르던 안방 젊은 새댁, 봄날 단장하고 화려한 누각에 오른다. 문득 시야에 잡힌 길섶의 푸른 버들, 낭군더러 벼슬 찾으라 내보낸 걸 후회한다.(閨中少婦不知愁, 春日凝粧上翠樓. 忽見陌頭楊柳色, 悔敎夫壻覓封侯.) ―‘안방 여인의 원망’(규원…
‘이 괘씸한 까치 녀석, 거짓말을 일삼다니. 희소식 전한다지만 통 믿을 수가 없어.몇 번 날아오기에 산 채로 잡아다, 튼실한 새장에 가두고 더 이상 얘기 않기로 했지.’“호의로 희소식 전하려 했는데 절 새장 속에 가둘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집 떠난 낭군께서 일찍 오길 바라신다면, 저 …
남쪽 땅으로 좌천된 동파, 당시 재상은 그를 죽이려고도 했지만,그곳 혜주에서 식사도 잘하고 꼼꼼히 도연명 시에 화답도 했지.도연명이 천년에 하나 나올 인물이라면 동파는 백년토록 이름 날릴 선비.벼슬길 들고 난 건 서로 달랐어도 풍기는 정취는 둘이 꼭 빼닮았지.(子瞻謫嶺南, 時宰欲殺之.…
낚시질 배운 더벅머리 아이, 삐딱하게 이끼 위에 앉으니 풀이 몸을 가린다. 행인이 길 물어도 멀찍이서 손만 내저을 뿐, 물고기 놀랠까봐 대꾸조차 않는다.(蓬頭稚子學垂綸, 側坐매苔草映身. 路人借問遙招手, 파得魚驚不應人.)― ‘낚시하는 아이(小兒垂釣·소아수조)’ 호령능(胡令能·785∼82…
듣자하니 촉(蜀)으로 가는 길, 가파르고 험난하여 다니기 어렵다지.얼굴 앞으로 홀연 산이 치솟고, 말머리 사이로 구름이 피어난다고. 그래도 꽃나무가 잔도를 뒤덮고, 봄 강물은 촉의 도성 감돌며 흘러가리.인생 잘되고 못되고는 이미 정해져 있는 법. 굳이 점 잘 보는 군평(君平)에게 물을…
동문을 나서면서는 돌아오지 않으려 했는데, 다시 돌아오니 슬픔이 북받쳐 오른다.독 안엔 쌀 한 됫박도 남아 있지 않고, 둘러보니 횃대엔 걸린 옷이 없다.칼 뽑아 들고 동문을 나서려는데, 집에서 애 엄마가 옷 붙잡고 흐느낀다.“남들은 부귀만을 바라지만 저는 죽을 먹어도 당신과 함께할래요…
삼월, 다 졌나 했던 꽃이 다시 피고/낮은 처마엔 날마다 제비들 날아든다.자규가 야밤에도 피 토하며 우는 건/봄바람을 되부를 수 없다는 걸 믿지 못해서라네.(三月殘花落更開, 小첨日日燕飛來. 子規夜半猶啼血, 不信東風喚不回.) ―‘봄을 보내며(송춘·送春)’ 왕령(王令·1032∼1059)
변방 전쟁터로 나간 병사, 추위와 고달픔에 잠인들 잘 이룰까.내 손수 지은 이 전투복, 그 누구 수중에 떨어질는지. 신경 써서 한 땀 더 바느질하고, 정성 담아 한 겹 더 솜을 댄다.이번 생애야 도리없이 지나가지만, 다음 생엔 인연이 맺어지기를.(沙場征戍客, 寒苦若爲眠. 戰袍經手作, …
집 남쪽과 북쪽으로 봄 강물이 넘치고, 보이는 것이라곤 날마다 오는 갈매기 떼.꽃길은 손님 없어 비질한 적 없고, 사립문은 오늘에야 그댈 위해 열었지요. 소반 음식, 시장 멀어 맛난 게 없고 항아리 술, 가난하여 해묵은 탁주뿐이라오,이웃 노인과도 기꺼이 대작하시겠다면 울 너머로 그분…
맛없는 술이라도 끓인 차보다 낫고, 거친 베옷이라도 없는 것보다 나으며, 못생긴 마누라, 못된 첩도 독수공방보단 낫지. 꼭두새벽 입궐 기다리며 신발에 서리 잔뜩 묻히느니, 삼복날 해 높이 솟도록 시원한 북쪽 창 아래 푹 자는 게 낫지. 화려한 의식으로 만인의 호송 받으며 북망산으로…
옥으로 단장한 듯 미끈하게 솟은 나무, 수만 가닥 드리운 푸른 비단실.가느다란 저 잎사귀 누가 재단했을까. 가위와도 흡사한 2월 봄바람!(碧玉장成一樹高, 萬條垂下綠絲조. 不知細葉誰裁出, 二月春風似剪刀.) ―‘버들의 노래(영류·詠柳)’ 하지장(賀知章·…
새해 들어 여지껏 향긋한 꽃 없었는데, 2월 되자 놀랍게도 풀싹이 눈에 든다.백설은 더딘 봄빛이 못마땅했던지, 짐짓 꽃잎인 척 정원수 사이로 흩날린다. (新年都未有芳華, 二月初驚見草芽. 白雪却嫌春色晩, 故穿庭樹作飛花.)―‘봄눈(춘설·春雪)’ 한유(韓愈·768∼824)
왕우군은 원래 맑고 진솔한 사람, 속세를 벗어난 듯 소탈하고 대범했지.산음 땅에서 만난 어느 도사가, 거위 좋아하는 이분을 몹시도 반겨주었지.흰 비단에 일필휘지 ‘도덕경’을 써내려가니, 정교하고 오묘한 그 필체는 입신의 경지.글씨 써주고 얻은 거위를 조롱에 담아 떠날 때, 주인과는 작…
“시어미가 고약하다는 며느리의 말, 아마 며느리의 한쪽 주장이겠지요. 며느리 못됐다는 시어머니 말은 근거가 있지만, 시어미 고약하다는 며느리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시어미가 고약하지 않다면 며느리는 죽지 않았을 터. 남의 며느리 노릇은 정말 힘들어. 사람이 죽고 없는데도 여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