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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라리[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5〉](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6/01/16/133174164.4.jpg)
깜박했는데감자 삶았어네가 잘 때성한 놈들 골라껍질 깎고 소금 뿌렸지벼랑 밭으로나 보러 오기 전에친정 엄마 생각에또 울기 전에볼가심하렴―전윤호(1964∼)이 시는 작고 따뜻한 전갈 같다. 힘들 때 골방에 들어가 몰래 읽고 싶은 편지 같은 시다. 여기에 큰 이야기는 없다. 대단한 미사여구…
![무야, 무우야[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4〉](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6/01/09/133126859.3.jpg)
무야, 무우야이 짧고 맑은 가을볕 아래네 희고 둥근 엉덩이로 흙을 조금씩 밀어내고그 속에 집 짓는 너를 생각하면나는 사뭇 진지해야 되는데무야, 무우야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는데무얼 잡고 힘을 쓰는지네 희고 둥근 엉덩이로 조금씩 흙을 밀어내고그 안에 들어가 사는 너를 생각하면나는 왜 이렇…
![불행[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3〉](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6/01/02/133082816.4.jpg)
그해 겨울 나는 불행의 셋째 딸이 되었어요. 언니들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되었지요. 나는 맨발로 눈이 쏟아지는 벌판을 달려요. 총총한 별들과 검은 돌멩이 같은 염소들 파랗게 울고 있는 벌판에서 나는 갓 태어난 늙은 아버지에게 흰 젖을 먹이고, 밤의 긴 머리카락으로 그의 얼굴을 …
![폴라로이드[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2〉](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2/26/133043647.5.jpg)
나는 달린다. 천천히 달려간다. 바라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골목은 못생겼다. 아무렇게나 생긴 곳에서 살아왔다. 거기에는 우산을 쓴 남자가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행상이 구름 모양의 콘을 내밀고 있다. 나는 달려간다. 죽지 않고 살아왔다.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여성과 비빔밥[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1〉](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2/19/133003290.3.jpg)
이것은 실화이자 로망. 새벽에는 참 좋다.무엇이든지 목넘김이 즐겁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한낮보다 개키지 못한 이불은 성마르게 습기를 머금는다.어떤 것도 하지 못할 목마름. 나는 나물이 먹고 싶다. 그보다는나물같이 후루룩 마셔버리는 게 낫겠다 싶은 거다.기억비빔의 효용성우리는 정교한 …
![울타리 밖[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0〉](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2/12/132956616.3.jpg)
머리가 마늘쪽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한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있다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제비가 날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그렇게천연히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오래오래 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밤이면 더 많이 별…
![쓰지 못했다[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9〉](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2/05/132910941.3.jpg)
그동안 끔찍한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는데그날 밤 얼굴 위에 수천 장 분량의 별빛이 쏟아졌는데눈동자가 오리온좌의 모서리를 스칠 때마다 몹시 시렸는데크게 운 다음에는 꼭 따뜻한 차를 마셨는데내가 끝내 돌아갈 곳은……한사코 확신을 거부했는데국경보다 공원이능선보다 강변이 더 좋았는데걷고 걸…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8〉](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1/28/132865017.4.jpg)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는노래가 있었다이제 나이가 들고노력해도 안 되는 것,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인정할 때가 왔다가사가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젊은 친구들에겐 그런 믿음도 도움이 되리라하지만 그건 거짓말이 맞았다내가 내…
![싸움[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7〉](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1/21/132817464.3.jpg)
감량 중인 복서는 말린 표고를 물고 하루를 겨우 버틴다 한다 저녁이 되면 접시에 버섯을 뱉는데 몽실몽실한 것들이 접시에 구른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을 버티고 나면 침이 말라 표고도 부풀지 않는데 스테인리스 그릇에 표고를 뱉으면 깡깡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바로 그때 복서는 새처럼 가볍다 귀…
![연민[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6〉](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1/14/132771328.3.jpg)
연못 위에 눈이 내렸다연못은 죽은 사람인 척 흰 천을 머리끝까지끌어 덮어쓰고 연못이 아닌 척 눈을 감고 있었다겨우 살얼음을 깔고 있는 주제에소양강댐도 아니고 손바닥만한 연못 따위가죽은 척하다니(중략)연못도 나처럼 편안하게 죽어 있다고 생각하고어느 날 나는 연못으로 걸어들어갔다그리고 백…
![아이, 우서라[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5〉](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1/07/132727490.2.jpg)
나중은 없을 텐데나중은젊은 날 누군가를 사랑하여길고 긴 쓰린 밤으로 배운 하나나중은 없다는 것그래도그래도 혹시나 해서치매 앓는 엄마 곁에 붙어제 절로 떨리는 노구의 메마른 손을 잡고엄마 우리 한 번만 다시 만나응?하고 물으니그래, 하고 일생처럼 답을 하고서아이, 우서라병아리가 활짝 날…
![왼쪽 어깨 너머의 날씨[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4〉](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0/31/132679985.3.jpg)
숲 안쪽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아직 내려오지 않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비 그치면 내려오거나 비 그쳐도 내려오지 않기로 한 것이 머루를 따 먹으며 손톱이 까매지도록 앉아바위벽을 타고 오르는 도마뱀 발톱 소리를 듣고 있을 것 같았다.어둔 굴 안에 젖은 콧등을 움찔거리는 것이 있고 안개는 …
![아침의 발견[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3〉](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0/24/132630401.3.jpg)
지난여름에는 인적 드문 산촌에 숨어 살았다. 무더위를 피한다는 핑계였지만 하나뿐인 누이가 세상을 떠나 힘들었던 탓이 컸다. 가여운 정을 재울 수가 없었다. 밤잠도 못 자고 출입도 안 하니 몸이 어두워져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허기진 시간, 누가 부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중략…
![기다림의 개[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2〉](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0/17/132584882.3.jpg)
누가 죽기를 바랐던 그 마음처럼그대를 미워하는 밤그대를 진심으로 미워하면그 미움이 그대에게 가닿을까그 미움이타로 카드처럼그대를 귀 기울이게 할까기다림의 개로 살아가는 밤―허연(1966∼ )시를 읽다 보면 미움이 마음으로, 마음이 미움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게 그거 아닌가? 미움과 마음…
![띵동[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1〉](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0/10/132537148.3.jpg)
마음에도초인종이 있다면 좋을 텐데비밀을 말하고 싶을 때 띵동,문이 열리면들어갔다 나왔다 가벼워질 텐데문이 열리지 않아도다음에 다시 와야지하염없이 서 있을 필요가 없을 텐데그 애가 띵동,내 마음의 초인종을 누른다면한 번은 문을 열고한 번은 문을 열지 않을 텐데그러면 그 애가 다시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