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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김정은, 아버지의 마지막 꿈을 기억하라](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8/06/27/90777313.1.jpg)
2011년 8월 김정일은 뇌중풍(뇌졸중) 후유증으로 절뚝거리며 힘겹게 생애 마지막 해외 방문에 나섰다. 나흘 동안 열차로 3900km를 이동해 간 곳은 러시아 아무르주. 이곳에서 그는 서울 면적(6만 ha)의 3배가 넘는 빈 땅 20만 ha를 임차해 농사를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김정은, 이젠 진심을 보여주라](https://dimg.donga.com/a/296/167/95/4/wps/NEWS/IMAGE/2018/06/13/90550891.1.jpg)
싱가포르로 날아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보며 18세기 연암 박지원이 쓴 ‘허생전’을 떠올렸다. 외진 산골에 박혀 있던 허생은 굶주린 아내의 질책에 7년 만에 집을 나서더니, 서울 최고 부자에게서 1만 냥을 빌려 순식간에 100만 냥을 만들었다. 김정은도 집권 7년째에 문을 열고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김정은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8/05/30/90311506.1.jpg)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편지를 보낸 날.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즉시 알 수가 없었지만 해외에 나와 있는 대사관, 주재원, 파견 근로자 사회엔 소식이 즉각 전달됐다. 해외에 체류 중인 한 북한 사람은 24일 밤 쓰린 가슴 달랠 길이 없었던지 내게 연…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북한 재건에 통찰력을 더하라](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8/05/16/90096898.1.jpg)
요즘 남한 언론을 열심히 본다고 하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시한 북한 지도부가 이 글도 자세히 읽어줬으면 좋겠다. 북한이 북-미 수교를 통해 정상국가로 나가면, 남한과 국제사회의 투자도 활발해질 것이다. 역사상 처음 오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절대로 허겁지겁 지원을 받아오는 것에…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10년만 본 父, 50년을 보는 子](https://dimg.donga.com/a/296/167/95/4/wps/NEWS/IMAGE/2018/05/02/89890245.1.jpg)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 북한 권력자가 탄 특별열차가 중국에 갔다. 집권 후 첫 중국 방문이었다. 그는 베이징에서 중국 수뇌부를 만나 대남정책 선회 배경을 설명했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살길을 찾겠노라 역설했으리라. 이것은 2000년 5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이야기다.…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 동화 ‘황금덩이와 강낭떡’의 교훈](https://dimg.donga.com/a/296/167/95/4/wps/NEWS/IMAGE/2018/04/18/89661562.1.jpg)
북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김일성이 들려주었다는 ‘황금덩이와 강낭떡’ 동화를 배우며 자란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옛날 어느 마을에 대홍수가 나자 지주는 제일 소중한 황금덩어리들을 보자기에 싸 들쳐 메고 나무에 올라갔다. 그의 머슴은 강낭떡(옥수수떡)을 싼 보자기를 메고 옆 나…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김정은도 감동했다는 평양의 환호](https://dimg.donga.com/a/296/167/95/4/wps/NEWS/IMAGE/2018/04/04/89448129.2.jpg)
“오늘밤 테레비에서 남조선 공연을 방영한대.” 소문은 바람처럼 빨랐다. 어린 나도 어른들 따라 일찌감치 TV와 마주앉았다. 그때가 1985년 9월이었다. 분단 이후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 행사가 진행됐고, 북한은 이를 생중계했다. 내가 본 첫 남…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인권법이 죽여 버린 북한인권단체](https://dimg.donga.com/a/296/167/95/4/wps/NEWS/IMAGE/2018/03/22/89217216.1.jpg)
2년 전 3월 북한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11년 가까이 여야가 옥신각신 싸운 끝에 가까스로 통과되긴 했지만, 법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법은 두 가지 핵심 이행사항을 담고 있다. 하나는 통일부에 북한 인권침해 사례들을 기록하는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치하는 것이었…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고은과 겨레말큰사전](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8/03/08/89001966.1.jpg)
나쁜 손버릇이 미투(#MeToo)로 고발되기 훨씬 전부터 난 고은을 “양심 없다”고 욕했다. 김정일 앞에선 감격에 겨워 시를 낭송하고, 북한 인권은 “가보지 않아 모른다”고 대답한 이중성도 싫었지만, 진짜 이유는 그가 매달려온 남북 공동 국어사전인 ‘겨레말큰사전’ 때문이다.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2차 ‘고난의 행군’은 로드맵에 없었다](https://dimg.donga.com/a/296/167/95/4/wps/NEWS/IMAGE/2018/02/22/88787068.1.jpg)
한국이 핵미사일 앞에서 무방비라면, 북한의 최대 약점은 체제 위기다. 근래에 한반도라는 그라운드에서 한미연합팀과 북한팀 사이에 벌어진 게임은 늘 반(半)코트 싸움이었다. 북한은 상대의 약점을 노린 극단적 공격 전술로 나왔고, 한미는 방어에만 급급했지 상대의 약점을 노려 반격하지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떡밥만 뿌리고 가는 낚시꾼은 없다](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8/02/08/88563923.1.jpg)
1996년 11월 26일 연평도로 북한 병사 정광선이 탄 목선이 표류해 왔다. 한국 경비정에 구조된 그는 조사 뒤 북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노동신문은 그를 ‘혁명전사의 귀감’이라며 한 개 면을 털어 크게 내세웠다. “괴뢰 놈들이 배를 끌고 가려 할 때 도끼를 휘두르며 정신 잃을 때까…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에서 자라며 보았던 동아일보](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8/01/25/88350532.2.jpg)
29999호. 오늘자 동아일보 지령(紙齡) 번호다. 내일(26일)이면 지령 3만 호다. 2만 호 발행이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10월 1일이었으니 3만 호 발행까지 31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이 기간은 내가 철들어 살아온 시대와 일치한다. 지령 3만 호를 맞아 동…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남북 궁합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8/01/11/88116766.1.jpg)
남북 관계엔 ‘궁합’이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 한쪽이 원한다고 해서 서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이란 ‘시어머니’도 큰 변수가 된다. 셋의 궁합이 가장 좋았던 시기는 2000년이었다. 5년 넘은 ‘고난의 행군’으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고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난 김정일에…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미제 난닝구’ 자랑한 ‘위대한 영도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12/28/87930127.2.jpg)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출신의 데니스 로드먼이 북한에 처음 갔던 2013년 2월 28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 트로터스’를 데리고 간 로드먼은 이날 김정은과 리설주 앞에서 북한 팀과 친선경기를 펼쳤다. 평양에서 고르고 고른 핵심 계층…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장성택 가문을 관통한 ‘사위의 저주’](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12/14/87722782.1.jpg)
어제(13일)는 장성택 전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 소식이 전해진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세계가 경악했던 그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김일성의 사위에서 “개만도 못한 만고의 역적”으로 낙인찍혀 돌봐줬던 조카의 손에 처형당한 장성택의 일생은 통일 후에도 이런저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