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인트

연재

이종찬 회고록

기사 41

구독 2

날짜선택
  • 대사 치를 준비하라던 盧… 중간평가 유보 뒤 “환영 건배를”

    대사 치를 준비하라던 盧… 중간평가 유보 뒤 “환영 건배를”

    청와대에서 무안을 당하고 돌아온 이후, 다시는 중간평가를 내 입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1988년이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12월 8일, 느닷없이 청와대에서 나를 박준병 의원의 후임으로 민정당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나는 노태우 대통령이 겉으로 표시는 안 했지만 속으로는 중…

    • 2015-02-14
    • 좋아요
    • 코멘트
  • “왜 자꾸 나를 벼랑으로 모나”… 盧, 중간평가 건의에 벌컥

    “왜 자꾸 나를 벼랑으로 모나”… 盧, 중간평가 건의에 벌컥

    13대 총선이 여소야대로 끝난 직후 나는 정무장관으로 기용됐다. 임명장을 받고 노태우 대통령을 따라 집무실에 들어갔는데, 그가 대뜸 하는 말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자네 어려운 선거를 잘 치렀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주기 바라네. 특히 중요한 것은 자네에 대하여 군부에…

    • 2015-02-07
    • 좋아요
    • 코멘트
  • “소선거구제땐 지역분열” 경고… 노태우 측은 귀를 막았다

    “소선거구제땐 지역분열” 경고… 노태우 측은 귀를 막았다

    전경환의 다음 케이스는 염보현 전 서울시장이었다. 염 시장은 오래전부터 노태우 대통령에게 찍힌 몸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내무장관으로 있을 때, 염보현은 경기도지사였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 씨가 경기도 화성에서 수목원을 운영했는데 염보현은 지사로서 많은 편의를 봐주…

    • 2015-01-31
    • 좋아요
    • 코멘트
  • “학생 ‘정화탱크’ 준비작업 끝나… 입법만 해주시오”

    “학생 ‘정화탱크’ 준비작업 끝나… 입법만 해주시오”

    1985년 5월 23일 함운경을 비롯한 삼민투 학생 73명이 서울 한복판의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학살을 지원한 미국의 공개사과와 전두환 정권 지원 중단’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정부는 극도로 흥분했다. 그 직후 노신영 국무총리가 국회대책도 논의할 겸 만나자고 해서 총리실…

    • 2015-01-17
    • 좋아요
    • 코멘트
  • “내 욕심에 노태우 서울 출마 막았다니… 말이 됩니까”

    “내 욕심에 노태우 서울 출마 막았다니… 말이 됩니까”

    노태우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부부로부터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다시 받은 지 며칠 후, 권익현 대표가 당무 보고차 청와대에 간다고 했다. 나는 국회운영관계 보고도 할 겸 같이 가겠다고…

    • 2015-01-10
    • 좋아요
    • 코멘트
  • 안절부절 노태우 “서울에 출마하라니… 어쩌면 좋겠소”

    안절부절 노태우 “서울에 출마하라니… 어쩌면 좋겠소”

    1984년 8월, 나는 천마산 스키장을 빌려 1박2일 코스로 지구당원 하계 연수행사를 열고 있었다. 갑자기 노태우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찌나 급하게 전화를 받으라고 독촉했는지 내 수행비서가 쪽지를 전하면서 ‘회의도중이라도 받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 2015-01-03
    • 좋아요
    • 코멘트
  • “정치1번지에 구시대 인물 안돼… 선배님이 맡으시죠”

    “정치1번지에 구시대 인물 안돼… 선배님이 맡으시죠”

    1981년 1월 초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정치일정상 1월 15일까지 창당대회와 대통령 후보지명을 끝내야 2월 대통령선거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구당 조직책 인선작업에 속도를 냈는데 서울, 그중에서도 종로·중구는 어려웠다. 정치1번지이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성에 차지 않고,…

    • 2014-12-20
    • 좋아요
    • 코멘트
  • “대통령 동생 체면 구겨”… 전경환, 예산안 삭감에 펄쩍

    “대통령 동생 체면 구겨”… 전경환, 예산안 삭감에 펄쩍

    민정당의 남은 과제는 총선거(1981년 3월 25일)였다. 선거 결과 민정당은 전체 276석 가운데 151석을 차지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크게 만족했다. 그는 사실 민심의 소재에 대해 과도하게 예민했다. 그래서 초선인 나를 국회사령탑인 원내총무로 임명한 것이 아닌가 하고...

    • 2014-12-13
    • 좋아요
    • 코멘트
  • “도와주십시오” 6년 수배생활 하던 조영래가 찾아왔다

    “도와주십시오” 6년 수배생활 하던 조영래가 찾아왔다

    민정당 창당 작업을 하느라 중앙정보부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던 1980년 8월 어느 날(나의 수첩에 기록된 일자), 조영래 군이 나를 찾아왔다. 계엄령하의 긴장된 분위기가 사회구석구석을 휩쓸 때였다. “선...

    • 2014-12-06
    • 좋아요
    • 코멘트
  • “관훈동 빌딩은 봉황이 알을 품는 자리”… 지관까지 동원

    “관훈동 빌딩은 봉황이 알을 품는 자리”… 지관까지 동원

    1980년 11월 28일 겨울이 벌써 왔는지 찬바람이 맵게 불었다. 하지만 날씨는 맑고 청명했다. 서울 퇴계로의 옛 무역회관 입구에서는 아침부터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왜 하필 무역회관에서 창당 첫 모임을 여는 거지?” “아마 경제제일주의를 부르짖을…

    • 2014-11-29
    • 좋아요
    • 코멘트
  • “새역사 창조는 좀 약해”… “민주복지국가 건설, 어때?”

    “새역사 창조는 좀 약해”… “민주복지국가 건설, 어때?”

    1980년 7월 3일 아침, 나는 서울 삼청동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 전두환 상임위원장에게 불려갔다. 위원장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노재원 대사도 만났고, 금진호 동력자원부 국장도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다. 알고 보니 국보위의 핵심멤버들이었다. 한참 후에 보안사령부의 권정달 정…

    • 2014-11-15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