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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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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통’ 박정희 정권, 신민당사 농성 YH여공들 강제진압

    ‘불통’ 박정희 정권, 신민당사 농성 YH여공들 강제진압

    ‘와이에이치(YH) 무역회사’ 노동자들은 79년 3월 30일 회사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해버리자 넉 달 동안 노동청을 비롯해 관계 기관을 찾아다니며 필사적으로 대책을 호소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정상화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재야인사들에게 도움을…

    • 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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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규, YS 만나 “신민당 총재 나오면 100% 구속할 것”

    김재규, YS 만나 “신민당 총재 나오면 100% 구속할 것”

    ‘박치기’ 사건이 있고 난 10여 일 후 다시 청와대 기자단이 상춘재 아래 잔디밭에서 대통령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출입 기자들이 모두 여기저기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자 대통령이 엄숙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지난번에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인데, 이 자리를 빌려 강 기자…

    • 201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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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규 차지철 갈등 격화… 박대통령은 차지철로 기울어

    김재규 차지철 갈등 격화… 박대통령은 차지철로 기울어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서거한 1979년은 격동의 70년대를 마감하는 해이기도 하면서 한국사의 중요한 대전환점이 되는 해이다. 집권층에 대한 민심의 불신은 이미 그 전해 말 총선에서도 드러났지만 유신 정권은 이를 정치적 위기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경직됐고 오만했다. 하지만…

    • 201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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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대 말 오일쇼크, 물가폭등으로 박정희 정권 벼랑 위로

    70년대 말 오일쇼크, 물가폭등으로 박정희 정권 벼랑 위로

    중동특수 효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6년부터 79년까지 한국 경제는 사상 최대 호황을 기록한다. 성장률은 1976년 10.6%, 77년 10.0%, 78년 9.3%였다. 78년에는 1인당 GNP가 1000달러를 넘어 당초 계획보다 2년이나 앞선다. 하지만 ‘수치로만 배부른 고도…

    • 201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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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대통령, 청와대 방문한 카터 앞에서 45분간 ‘안보교육’

    박정희 대통령, 청와대 방문한 카터 앞에서 45분간 ‘안보교육’

    카터 대통령이 추진한 주한 미군 철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 내 반대가 갈수록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김용식 주미대사는 86년 동아일보에 ‘외교 33년 회고록’을 연재했는데 여기에는 70년대 후반 한미 갈등이 생생하게 소개돼 있다. 이하 내용은 당시 신문기사들과 그의 회고…

    • 201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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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터 美대통령 “주한미군 철수”… 한미안보 최대위기

    카터 美대통령 “주한미군 철수”… 한미안보 최대위기

    1976년 말 김지하에 대해 ‘징역 7년’이라는 법원의 최종 선고가 내려지고 본격적으로 그가 감옥생활을 보낸 77년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79년까지는 독자들도 주지하다시피 긴급조치 9호가 지배했던 시대였다. ‘긴조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한국 사회에는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감이 쌓…

    • 201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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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하, 감옥에서 꽃과 풀 보며 생명사상 깨쳐

    김지하, 감옥에서 꽃과 풀 보며 생명사상 깨쳐

    재판이 끝나자 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지하는 미친 듯이 책을 읽어댔다. 그는 “현재 내가 가진 지식의 거의가 그 무렵 수많은 독서의 결과”라고 말한다. 당시 주로 몰두한 책들은 생태학, 선불교, 테야르 드 샤르댕(프랑스의 가톨릭 사제이자 고생물학자였으나 진화론을 주장했다)의 …

    • 201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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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하 “박정희와 중정 요원들에게도 하늘의 은총을”

    김지하 “박정희와 중정 요원들에게도 하늘의 은총을”

    김지하는 재판부 기피신청을 한 75년 5월 19일부터 1년 반에 걸쳐 재판을 받았다. 김지하의 말이다. “나는 이미 목을 떼서 감방에 두고 왔기 때문에 두려움은 별로 없었다. 다만 불쌍한 사람은 아내였다. 재판하는 날은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가족들 만나는 접견일이기도 했다. 아…

    • 201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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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포천서 의문의 추락사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포천서 의문의 추락사

    김지하 옥중 양심선언의 충격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75년 8월 17일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니 장준하 선생의 추락사였다. 그는 재야를 중심으로 유신헌법 개정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해 1974년 4월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

    • 201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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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마 끝이 무릎에서 17㎝ 이상 올라가면 처벌

    치마 끝이 무릎에서 17㎝ 이상 올라가면 처벌

    유신 때 학교를 다녔던 지금의 50대 이상은 70년대 학교와 사회 분위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혼식) 도시락 검사에서부터 국민교육헌장 외우기, 반공 웅변대회, 학도호국단 등 나라 전체가 ‘병영’처럼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기막혀하겠지만 부모세대 때에는 남자…

    • 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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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작정 상경’ 누이들 영화…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무작정 상경’ 누이들 영화…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1975년부터 시작된 반짝 경제호황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향락 산업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룸살롱’ 접대문화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도시 뒷골목에는 사창가가 늘어났다. 급격한 산업화와 농촌공동체 붕괴가 이루어지면서 ‘무작정 상경’의 시대 그 틈바구니 속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이 …

    • 201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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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경제위기 극복 위해 중동건설사업 진출 주도

    박정희, 경제위기 극복 위해 중동건설사업 진출 주도

    1975년부터 한국경제는 미증유의 호황을 맛보게 된다. 1973∼1974년에 기름값이 4배로 오르는 1차 오일쇼크를 경험하면서 한국 경제의 허약함에 너나없이 절망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뜻하지 않은 ‘달러 박스’가 등장하니 바로 ‘중동 특수’였다. 1960년…

    • 201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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