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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8>5·16](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3/04/17/54485299.1.jpg)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7>가난했던 청춘들](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3/04/16/54458806.2.jpg)
지금 청춘들도 아프다고 아우성이지만 1960년대 청춘들은 더했다. 늘 돈이 없어 끼니를 굶을 때도 많았다. 김지하도 대학교 때 ‘거지’였다고 한다. 집에서 돈이 오지 않을 때, 술은 마시고 싶은데 물주가 없을 때 마음씨 좋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곤 했다는 것이다. …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6>죽산 조봉암](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3/04/15/54434747.1.jpg)
죽산은 한국에서 ‘진보’라는 말을 처음 쓴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56년 11월 진보당 창당대회 개회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5> 4·19 이후 김지하](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3/04/12/54380851.1.jpg)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4>자유의 범람](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3/04/11/54350570.2.jpg)
4·19 직후인 1960년 12월 동아일보는 ‘세모비정(歲暮非情)’이란 제목의 12회에 걸친 시리즈물에서 1년 중 가장 살기 힘든 겨울을 힘겹게 이어가는 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염소장수’ ‘품팔이군’ ‘군밤장수’ ‘빈민굴’ ‘바가지장수’ ‘구두닦이’ ‘노점음식점’ ‘…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3> 피의 화요일](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3/04/10/54322335.1.jpg)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2> 1960년 4·19 혁명](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3/04/09/54296001.1.jpg)
김지하는 59학번이다. 그는 본래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환쟁이는 가난하다’는 말을 청소년 시절부터 이골이 나게 들어 그림과 학문의 길을 병행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고민하다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의 꿈은 장차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다. “…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 <1> 1974년 민청학련 사형선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3/04/08/54268979.1.jpg)
‘이철 사형! 유인태 사형! 김병곤 사형! 나병식 사형! 여정남 사형! 김지하 사형! 이현배 사형!’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깊은 늪과 같이 적막하던 법정에 검찰관의 긴장된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방청석에서 낮은 비명이 새나왔다. 1974년 7월 9일 서울 용산구 육군본…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 산업화 시작이자 민주화 투쟁의 출발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3/04/08/54268893.1.jpg)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썼을 때 김지하는 수배 상태였다. 1973년 겨울 어느 날 여관방에서 자고, 다음 날 새벽 친구 집으로 도피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을 때, 누군가 벽에 분필로 써 놓은 ‘민주주의 만세’라는 글귀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이 글귀를 읊조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