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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지내다 60년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뛰어든 뒤 상도동을 이탈하지 않고 조직을 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업무를 추진하는 스타일. 온화한 성격이지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고난에 처했을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수출을 주로 하는 섬유회사를 직접 경영했고 14대 국회에 진출한 이후 줄곧 경제 관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장과 사장 등 탄광 경영진으로 일하다 13대때 정치인으로 변신한 3선의원. 뇌졸중으로 9년간이
재야시절 농민운동 외길을 걸어왔던 농업전문가. 13대 때 국회에 들어온 뒤 내리 농림해양수산위에서만 활동하
상지대교수로 있다 정계에 입문해 12,13대 원주에서 내리 당선. 14대때 국민당 돌풍에 고배를 마셨으나 92년 대
의사출신으로 11대때 민한당 공천으로 금배지를 단 3선의원. 경북지역 출신이지만 민주계를 고집할 정도로 소신이 강하다.
14대에 이어 15대에도 전국구 예비후보로 의석을 승계한 재선의원. 여성정치문화연구소를 만들어 여성의 정치참여
방송사 명앵커 출신으로 깔끔하고 도회적인 이미지만큼이나 매끄러운 언변의 소유자. 지난해 대선 전까지 2년 동
‘사무라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당내 최다선(5선)의원. 국민회의에서는 드문 충남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