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대못질’]제1부<18>수백억 혈세들여…

  • 입력 2007년 10월 1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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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가 주장하는 그 많은 사실들이 적어도 제가 접하는 언론에서는 보도된 것을 본 일이 없고 언론보도 분석 보고에서도 접한 일이 없습니다. 국정브리핑에 들어가면 수십 편의 주옥같은 글이 있는데 왜 언론에 나오지 않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9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에서 열린 제44회 방송의 날 축하연서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국정브리핑’ ‘청와대브리핑’ ‘한국정책방송(KTV)’ 등이 ‘언론의 형식을 흉내 낸 관영매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언론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매체를 만들어 주장하고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필요에 따라 탄생한 이들 매체는 국민 세금에서 나온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면서 정부 정책 홍보라는 이름 아래 언론에 대한 반론과 반박, 야당 공격의 전위대로 활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청와대 브리핑- 비판언론에 “걷어치워라”… 정권의 ‘경호매체’로

국정 브리핑- 정책홍보 내세워 언론-야당 때리기 ‘전위대’역할

한국정책방송- 평균시청률 0.05%… 공무원들조차 대부분 외면

○ 정권의 ‘정치적 경호 매체’

청와대브리핑과 국정브리핑은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회보’ 형식으로 제작된 ‘인수위 브리핑’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정부 내 소식을 국민에게 알리고 좀 더 친근하게 다가서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로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을 공격하는 것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양정철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이 2004년 행정수도 논란에 대한 언론 비판을 공격하며 ‘조선, 동아일보는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고 주장했던 것도 청와대브리핑을 통해서였다.

최근 국정브리핑과 청와대브리핑은 정치적 사안 외에 부동산 교육 재정 등 사실상 전방위에서 노 대통령과 정권의 ‘수호천사’를 자임해 왔다.

11일자 국정브리핑만 해도 2∼4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방어 기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톱뉴스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낸 한반도 평화·공동번영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회담 성과를 내세우고 있다. ‘철도-고속도로-항만 결합, 경협 인프라 깔았다’로 시작되는 ‘2007 남북 정상선언, 한반도 평화경제의 새 비전’이라는 시리즈도 눈에 띈다.

그 아래에는 정상회담 직후 대다수 언론에서 지적한 경협자금 조달의 문제점을 반박하는 글을 실었다.

국정브리핑은 지난달 13일부터 ‘실록 교육정책사’를 연재하면서 최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교육공약 발표 과정에서 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 ‘3불(不) 정책’ 등 현 교육 정책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 ‘(정권) 흔들지 말라’는 청와대브리핑

청와대브리핑은 국정브리핑과 유사하면서도 청와대가 제작에 관여하는 만큼 노 대통령의 ‘색채’가 더 짙게 배어 있다.

11일 현재 정상회담의 성과를 주로 다루고 있는 메인 화면 아래에는 ‘균형발전에 대한 이명박 후보의 본심이 궁금하다’ ‘교육정책 흔들지 마라’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 흔들지 마라’ 등의 글이 잇달아 올려져 있다. 제목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글이 많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 흔들지 마라’는 이 후보가 최근 ‘한 사람이 거주 목적으로 장기 보유하고 있는 한 개 주택에 중과세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힌 것을 집중 비판했다.

장기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금 경감 논의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범여권 일각에서도 진행되고 있음에도 청와대브리핑은 2005년 8·31 부동산 대책 발표 후 계속돼 온 논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언론 비판은 여전히 단골 메뉴다.

메인 화면 왼쪽에는 얼마 전부터 ‘사람 도리 하는 게 그렇게 이상합니까’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글이 올라 있다. 정구철 대통령국내언론비서관이 작성한 이 글은 신정아 씨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난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의 부인을 노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만나 위로한 것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순수한 위로의 만남인가’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습니다…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을 때 만나서 위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그게 대통령 내외분의 사람을 대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세간의 각박한 잣대로 재단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청와대 최고위급 인사에 대한 의혹이 불거진 뒤 끝까지 그의 거짓 해명을 대변하다가 망신당한 데 대한 청와대의 반성은 찾기 어렵고 ‘일반적 기준’으로 노 대통령 부부를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외부로 브리핑하는 것보다 청와대 내부로 열람을 국한하는 게 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KTV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정부정책을 국민에게 알기 쉽게 홍보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4일 청와대브리핑에 쓴 ‘공무원 여러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연구해 발표했는데 막상 보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극복해 보고자 정부가 KTV를 운영하고 있다”며 시청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KTV는 정작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KTV의 최근 평균 시청률은 0.05%대다. 4800만 국민 중 2만4000명 정도가 이 방송을 본다는 것이다. 시청자 전체가 공무원이라 가정한다 해도 전체 공무원 93만여 명 중 2.6%만이 KTV를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정부가 이들 매체를 비롯해 국방홍보원 아리랑TV 등 정부의 일방적 목소리를 내보내는 기관과 매체에 올해에만도 860억 원의 예산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언론학자는 “노무현 정부가 직접 언론의 영역에 참여해 여론을 생산하겠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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