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핵화 없는 평화협정은 허망한 얘기”

  • 입력 2007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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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은 6·25전쟁의 포성이 멎고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4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에선 노무현 대통령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이달 들어 잇단 공개발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및 한반도 평화체제 이행 구상의 군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의 기류는 사뭇 다르다. 정전협정 기념일을 하루 앞둔 26일, 미 정부 내에서는 “한국 정부가 정전협정체제를 대체할 평화체제 구상의 필요성을 앞장서 전파하고 있지만 워싱턴은 이를 근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이 들려왔다.

▽평화체제는 동상이몽?=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최근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평화체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6자회담 참가를 앞둔 16일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언뜻 보기엔 ‘비핵화가 먼저냐, 관계 정상화가 먼저냐’를 둘러싼 북-미 간 샅바싸움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대북 접촉사정에 정통한 한 당국자는 26일 “이 말은 한국 정부가 들으라는 소리”라고 풀이했다. 그는 “힐 차관보의 이런 말 정도에 북한이 압박을 받겠느냐”며 결코 평양을 겨냥한 메시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당초 평화체제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쪽은 미국이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해 11월 베트남 한미정상회담 직후 “북한의 핵 폐기 시점에 줄 대가 가운데 6·25전쟁의 공식 종료선언이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 발언이 나온 뒤 사석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말까지 공개하면서 이슈화에 나섰다. 부시 대통령이 “휴전상태인 6·25전쟁을 종전하고 평화협정을 맺는 과정에서 (내가) 남북한 양측과 만나 서명을 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참모들과 부시 대통령의 ‘속뜻 해석’을 위해 구수회의까지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요즘 베이징 서울 워싱턴에서 접촉한 미국 관리들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는 당장의 비핵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평화체제 논의라는) 거대담론은 한미 간에 갈등만 부를 요인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연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한국 정부의 무리수를 경계한다는 뜻이다. 핵실험을 한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려면 비핵화 진전 혹은 이에 걸맞은 ‘회담의 명분’이 필요하다. 냉전체제를 벗는 평화체제 구축은 정상회담의 명분이 될 수도 있지만 이에 관해선 아직 한미 간에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

한미 양국은 “비핵화 노력에 걸맞은 정치적 인센티브를 북한에 준다”고 합의했지만 이에 대한 해석에선 서로 생각이 다를 개연성이 높다.

▽실체 모호한 평화협정=워싱턴에서는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의 실체도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당국자는 26일 북-미 간 접촉과정에서 북측 인사가 평화협정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식의 말을 한 것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북한은 ‘평화협정=주한미군 철수’라는 등식을 갖고 있다. 북한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주한미군을 그대로 둔 채라면 어떤 협정을 맺더라도 평양권부의 안보 불안이 가시지 않을 것으로 북한은 보고 있다.

따라서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서둘러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선언’한 뒤 구체적 실무 합의는 훗날로 미룬다면 위험천만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의 의미가 큰가=한국 정부 안팎의 평화협정 옹호론자에게 단골로 인용되는 문서가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보고서다.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한반도 전문가 46명은 애틀랜틱 카운슬의 주관 아래 한반도의 장래를 고민한 보고서를 올 4월 발표했다.

보고서는 대체로 북-미회담, 4자회담, 비핵화 완성 등 다양한 형태의 레짐(regime·체제)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 보고서 작성 과정에 미 국무부는 적지 않은 조언을 했다. 이는 앞으로 국무부의 정책입안 과정에 충분한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 보고서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이 소식통은 “이 보고서는 지난 20∼30년간 국무부가 거론한 정책사안을 매끄럽게 엮은 정도로 이해하는 게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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