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조명하 의사의 ‘그날’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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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전 대만서 日王장인 척살 시도… 대학생 20여명, 순국지 찾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 대만을 방문한 대학생 20명이 14일 옛 타이베이 형무소 벽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명하 의사는 1928년 5월 대만 타이중을 방문한 일본 육군대장 척살을 시도하다 붙잡혀 이곳에서 그해 10월 사형을 당했다. 타이베이=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 대만을 방문한 대학생 20명이 14일 옛 타이베이 형무소 벽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명하 의사는 1928년 5월 대만 타이중을 방문한 일본 육군대장 척살을 시도하다 붙잡혀 이곳에서 그해 10월 사형을 당했다. 타이베이=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14일 대만 타이베이(臺北) 시 옛 타이베이 형무소 터. 한국 대학생 20여 명은 낡은 벽 앞에 섰다. 번듯한 통신회사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은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짙은 녹색과 회색빛이 돌았다. 낡은 벽에 눈길을 주는 행인은 없었다.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인 스물 넷, 조명하 의사는 차가운 이 벽 안에 있었습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인 김주용 박사가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 의사는 1928년 5월 14일 타이중(臺中)을 방문한 일본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히코를 척살하려다 현장에서 붙잡혔다. 구니노미야는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었다. 같은 해 10월 조 의사는 스물넷의 나이로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일본 왕족이 공격당했다는 뉴스에 일본 본토는 한 달간 계엄령이 떨어졌을 만큼 혼란스러웠고, 책임을 물어 대만 총독이 바뀌기까지 했다.

이날 형무소 터를 찾은 대학생 20여 명은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전국에서 선발된 탐방단이었다. 박종원 씨(26·서경대 경영학과 대학원생)는 “막연히 알고 있던 우리 선조의 역사를 직접 현장에서 눈으로 보니 가슴이 더욱 아프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준비한 태극기와 중국어로 쓴 조 의사 이야기의 플래카드를 본 현지인들은 “이곳에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물으며 관심을 표시했다. 남기형 조명하의사기념사업회장은 “몇 해 전 미국은 대만 정부에 요청해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숨진 미국인들을 기리는 표지를 붙였다”며 “이곳이 조 의사가 순국한 곳이란 동판 표지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2년 한국 정부가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 단교한 뒤 대만과 공유하던 독립운동 역사의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타이베이에서 자동차로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타이중 시에서는 조 의사가 구니노미야를 척살하려 했던 지점인 옛 도서관 자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 박사가 자동차들이 좌회전을 시작한 길을 손으로 가리키며 “코너를 돌 때 일본군 차도 속도가 줄어든다는 것을 노리고 조 의사가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설명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장을 둘러봤다.

그가 취조를 당한 타이중 경찰서 앞에 서자 탐방단과 함께 온 조 의사의 손자인 조경환 씨(59)가 고개를 떨궜다. 87년 전 같은 자리에서 고초를 당했을 할아버지 생각이 떠오른 듯했다. 1926년 조 의사는 막 태어난 아들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손자 조 씨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바라는 것은 역사를 기억해주는 것뿐”이라며 “앞으로 한국을 이끌고 갈 학생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주었기에 할아버지도 지하에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당시 배로 지룽(基隆) 항에 들어온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일본군에게 붙잡힌 항구 근처 우체국 안을 학생들은 천천히 걸었다. 한솔 씨(19·이화여대 국제학부)는 “우리의 역사인데 그동안 잘 몰랐던 점이 너무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우리의 공간과 시간이 열려 있는 이곳을 한국인들이 계속 기억할 수 있도록 의거 관련 장소에 표지를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타이베이=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조명하#의사#순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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