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 임병대 교수 “5·18때 잃은 아들, 후배들이 꿈 잇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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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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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아들 모교에 장학금

“비록 5·18로 아들은 잃었지만 후배들이 대신 그 꿈을 이룬다면 큰 보람이 될 겁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총탄에 아들을 잃었던 아버지가 남모르게 아들이 다녔던 중고교에 30년째 장학금을 전달해 감동을 주고 있다.

조선대 토목학과 명예교수 임병대 씨(84·사진)는 16일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아들의 뜻을 어떻게라도 잇고 싶어 시작한 일”이라고 그동안의 소회를 말했다. 그의 막내아들 균수 씨(당시 21세)는 1980년 원광대 한의대 본과 2학년에 재학 중 5월 21일 광주 금남로1가 전남도청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가했다가 계엄군 총탄에 맞아 청춘을 마감했다. 균수 씨는 1980년 5월 학교가 있는 이리(현재 익산시)에서 가족을 만나기 위해 17일 광주에 왔으며 다음 날인 18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후 휴교령이 내려지자 집에 머물던 중 둘째 형 양수 씨와 함께 금남로에 나왔고 계엄군의 첫 발포가 있은 21일 오후 사망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임 씨는 그날 석가탄신일을 맞아 고향인 전북 순창의 한 사찰을 다녀온 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몸을 가누지 못할 충격에 빠졌다. 그는 “견딜 수 없는 슬픔 속에서 문득 ‘아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한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며 “이후부터 아들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1년부터 아들이 다녔던 전북 순창북중과 순창고, 광주 인성고에 해마다 각각 5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또 아들의 추모비가 세워진 원광대 한의대에는 1989년부터 해마다 100만 원을 ‘무등장학금’이란 이름으로 기탁했다. 장학금 재원은 1990년 정부가 지급한 보상금과 사재로 구입한 상가 한 채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충당하고 있다.

임 씨는 “죽은 아들을 대신해 수백 명의 아들이 생겼다”며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장학금은 계속 전달되도록 유언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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