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축령산 편백숲과 용인자연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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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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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19세기 중반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청년이 난데없이 자연에서 살겠다며 집을 떠났다. 물질을 얻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정착한 곳은 ‘월든’ 호반(매사추세츠 주). 숲 속에 통나무집을 짓고 홀로 살았다. 꼭 필요한 것만 제 손으로 충당하는 자급자족의 삶이었다.

2년 2개월의 숲 속 생활. 그는 깨달았다. 일체의 물질적 근심과 걱정을 떨치지 않는 한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음을. 이런 각성에 이르는 동안의 숲 속 삶이 글로 엮였다. ‘월든, 숲 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1854년 발간)이다. ‘무소유의 삶’ 법정 스님이 아꼈던 책으로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20세기 환경운동의 아버지다.

이달 말(28일쯤)이면 축령산(전남 장성)에 ‘치유의 숲’이 개장된다. 자연을 관조하며 사색하고 피톤치드로 건강을 도모하는 공간이다. 숲이 치유공간이 된 데는 ‘월든, 숲 속의 생활’이 큰 몫을 했다. 축령산은 특별하다. 쭉쭉 빵빵 편백과 수려 늠름한 삼나무로 울창하다. 그 숲길은 예쁘다. 누구든 걷게 만든다. 뒷짐 진 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눠가며…. 편백 숲엔 피톤치드도 풍성하다. 물리적 치유효과도 뛰어나다.

축령산 편백 숲은 ‘춘원 임종국’(1915∼1987), 그 자체다.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의 소설)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매일 도토리를 심어 황무지를 숲으로 바꾼 주인공―의 현신이다. 그도 21년간 쉼 없이 나무를 심었다. 596ha(약 180만 평)의 253만여 그루 편백과 삼나무가 그것이다. 그간 고초는 필설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그는 운명 순간까지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고 말했단다. 그 열정의 뿌리는 깊다. 일제강점기에 인촌 김성수 선생이 조성한 삼나무와 편백 숲이다. 숲 속 안내판에서 찾아낸 사실이다.

세상은 오묘하다. 좋은 뜻은 좋은 일로 발전된다. 시공의 제약도 초월한다. 소로의 월든이 축령산 치유의 숲으로, 선각자 인촌의 조림이 조림왕 춘원의 축령산으로 전이된 게 그렇다. 의도하지 않아도 좋은 뜻은 통한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나아진다. 어제 개장 35주년을 맞은 에버랜드에서도 같은 이치를 읽는다. 애초부터 호암(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호)이 거대 테마파크를 겨냥해 일으킨 게 아니어서다.

시작은 소박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유난히 헐벗은 산야가 안타까워서’ 시작한 나무 심기가 단초였다(‘호암전기’ 기록). 그를 고무시킨 건 우리 산야의 4분의 1이 개발 가능하다는 말. 숲을 자원 공급원으로 활용하면 좁은 국토를 넓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데로 생각은 발전했다. ‘용인자연농원’(에버랜드의 전신·1976년 개장)의 모회사 ‘중앙개발’은 1968년 그렇게 설립됐다.

호암은 조림을 위해 묘포장부터 조성했다. 그리고 신품종 경제수 묘목을 수입해 키웠다. 좋은 퇴비가 필요하자 양돈을 추가했다. 물은 인공호수를 파서 댔다. 그는 비전을 공유하고 싶었다. 가족공원이 대안이었다. 사람들이 숲에 둘러싸여 동물과 함께 지내는…. 그게 자연농원이었고 현재 세계 7위 글로벌 테마파크로 등극한 에버랜드다. 이젠 에버랜드만 보지 말고 우거진 주변의 숲도 함께 살피자. 숲은 희망이고 미래며 생명이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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