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씨가 만난 ‘위안부 진실 전도사’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

  • 입력 2007년 5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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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일 공동 세미나에 참석차 내한한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왼쪽)를 한수산(작가) 세종대 교수가 인터뷰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4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일 공동 세미나에 참석차 내한한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왼쪽)를 한수산(작가) 세종대 교수가 인터뷰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투사로구나’ 생각했다.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로 데려간 것은 아니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발언이 있자마자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선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60) 주오(中央)대 교수의 이야기가 실린 외신을 접하며 떠오른 이미지는 ‘진실의 무서움’ 그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만난 요시미 교수는 부드럽고 섬세했다. 긴 시간 꼿꼿하게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학자의 단아함까지, ‘무서운 사람’이 아니었다.

4일 서울 중구 정동 배재대학술지원센터에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 주최로 ‘강제성이란 무엇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열린 한일 공동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한 그를 종로구 신문로1가 피해진상규명위원회 회의실에서 만났다.

―선생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강제성’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육성으로 확인하고 싶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작은 부분에 매달려 전체를 부정해 보자는 것이고 (군 위안부 문제에서) 군의 관여만은 피하자는 것이다. 정부 최고 책임자가 공공연하게 발언을 하는 것은 처음이며 심각한 문제다.”

―선생이 군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공식 문서를 아사히신문에 제시한 것이 1992년 1월 11일이다. 바로 다음 날 일본 정부는 이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일본의 우익들은 ‘강제’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일본군은 책임이 없다’는 망언을 그치지 않고 있다.

“군 위안부 문제에서 군의 강제는 명백하고 그 책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들이 주장하는 ‘협의의 강제’를 실증할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한 예로 1942년 3월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침공한 일본군 부대는 블로라에서 유럽 여성 20명을 두 채의 집에 감금했다. 그중 적어도 14명이 3주간에 걸쳐 통과 부대의 군인들에 의해 성폭행 당했다. 이외에도 일본의 재판소가 군과 관헌에 의한 폭행과 협박으로 납치한 사례를 인정한 것이 적지 않다. 고노 담화가 나온 단계에서 나는 곧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고노 담화도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주었다’고 하면서 그 주체가 일본군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그 담화는 정부의 공식 견해임에도 각의 결정이나 법률 등으로 확정한 것이 아니어서 역대 내각을 실효적으로 구속하지 못했다.”

―군의 책임이 없다면 위안소를 민간인이 마음대로 설치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중요한 포인트다. 한마디로 위안소는 군이 결정하고 군의 허락 없이는 설치하지 못했다. 일본 우익도 위안소가 없었다고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 여성들이 ‘자유의사’로 ‘돈벌이를 목적으로 응모’했기 때문에 군이나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수많은 연구 결과를 부정하면서까지 아베 총리가 노리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들은 ‘일본의 자긍심(誇り)’을 말한다. 과거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인정하는 것은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는 것으로 본다. 일본군이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베 총리의 의도는 헌법 개정과 연결되며 자위대를 전투부대로 해외에 파견할 수 있을 때 일본이 긍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강점당한 식민지 여성이 스스로 일본군을 ‘위안’하러 전쟁터를 전전했다는 것인가. 이러한 일본의 망언을 보자면 그들과 역사 인식의 차이를 좁힐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낀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한정된 사람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여러 채널을 통하여 토론하며 묻혀 있는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경제적 관계가 깊어진 지금 고립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본의 어떤 사회 현상이 이런 역사왜곡 발언의 배후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가.

“도의적 책임은 나라에 따라서는 무거운 책임이지만 일본의 경우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도 배경의 하나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그것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의 정규직 취업이 어려운 현실이다. 또한 30대 전후 세대가 신뢰할 만한 사회단체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긍지 있는 국가를 가지고 싶어 한다. 한편으로는 과거 할아버지 세대의 일을 언제까지나 되풀이해야 하는가 하는 반발도 있다.”

요시미 교수와 헤어지며 나도 묻고 싶었다. 일본은 언제까지 역사왜곡을 되풀이하겠다는 것인가. 역사는 부정하고 싶다고 부정되지 않는다. 일본의 책임 있는 역사 인식을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만 하는가.

한수산 작가·세종대 교수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1946년 야마구치 현 출생 △1970년 도쿄대 문학부 졸업 △1972년 도쿄대 문학부 인문과학연구과 석사 △현 주오대 상학부 교수 △현 일본 전쟁자료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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