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일 회장 “신라금 복원 왜 했냐고? 우리 역사잖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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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후원 숨은 큰손… 재일교포 사업가 문만일 회장

1300년 만에 복원한 신라금과 나란히 선 문만일 일본 아이키그룹 회장. 크라운해태제과 제공
1300년 만에 복원한 신라금과 나란히 선 문만일 일본 아이키그룹 회장. 크라운해태제과 제공
2007년 가을, 일본 나라(奈良)국립박물관의 연례행사인 쇼소인(正倉院·왕실 유물창고) 특별전을 보다 그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1300년 전 신라가 일본에 전해준 ‘신라금’을 마주했을 때였다. 길이 158.2cm, 폭 30∼38cm의 이 가야금을 보면서 그는 결심했다. 꼭 이 악기를 복원하겠다고.

재일교포 2세인 문만일 아이키그룹 회장(67)은 신라금 복원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악기 장인을 수소문했다. 쇼소인 출신으로 고악기를 전문적으로 복원해온 장인은 “악기는 다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땅한 오동나무를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100년 이상 묵은 오동나무 가운데 반듯하고 곧은 나무를 찾는 데 2년 넘게 걸렸다. 중국에서 150년이 넘은 오동나무를 어렵사리 구했고 1년 반의 제작 기간 끝에 지난해 신라금을 완성했다.

최근 도쿄에서 만난 문 회장에게 ‘왜 그렇게 신라금 복원에 매달렸느냐’고 묻자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우리 역사니까요.” 한국 전통악기를 널리 알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신라금은 지난해 일본 전통 현악기 샤미센 연주자인 가나자와 사카에의 연주 인생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첫선을 보였다. 최근 도쿄에서 열린 ‘한국의 풍류’ 공연에서도 낭랑한 소리를 뽐냈다. 오사카에 사는 그는 신칸센으로 신라금을 직접 운반했다.

▶본보 1일자 A21면 열도의 심장에서 울려퍼진 한국의 전통 가락

그의 부모는 제주도 4·3사건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문 회장이 국악을 접하게 된 것은 13년 전. 국악 공연에서 거문고와 대금 연주를 듣고 무릎을 쳤다. ‘이것이 진짜 소리구나.’ 국악 이론과 악기 구조에 대해 공부했고, 사업차 한국을 오가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국악 공연을 찾았다. 서울 마포에 있는 한국사무소 건물 일부는 국악연주단체 ‘슬기둥’의 연습실로 내줬다. 일본 공연을 마친 국악인들을 자택으로 초청해 하우스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안숙선 명창, 슬기둥, 해금 연주자 정수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섰다.

건축업과 임대업을 하는 문 회장은 일본 고택을 허물 때 지붕에 쓰인 150∼200년이 된 대나무를 별도로 보관해둔다. 오랜 세월을 견딘 단단한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청명하고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좋은 악기가 만들어지면 연주자에게 선물한다. 그의 자택 내 온·습도가 조절되는 ‘악기 보관방’에는 대금이 100대, 소금과 단소가 100대, 가야금이 20대에 타악기도 수십 개가 있다. “국악 연주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힘닿는 데까지 국악인들을 지원할 겁니다.”

도쿄=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쇼소인 특별전#문만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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