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명문가의 본질, 부모가 책 읽는 풍경이더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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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 최효찬 지음/376쪽·1만6000원·예담

“아버지 한 사람이 선생 백 명보다 낫다.” 1000일 독서로 교보문고를 일으킨 신평재 전 교보증권 회장 가문(위부터), 케임브리지대 최초로 형제 교수를 탄생시킨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가문, 3대에 걸쳐 정치인의 길을 걷는 고 정일형 박사 가문. 예담 제공
“아버지 한 사람이 선생 백 명보다 낫다.” 1000일 독서로 교보문고를 일으킨 신평재 전 교보증권 회장 가문(위부터), 케임브리지대 최초로 형제 교수를 탄생시킨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가문, 3대에 걸쳐 정치인의 길을 걷는 고 정일형 박사 가문. 예담 제공
한국이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부모 자녀 관계가 가장 ‘도구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쯤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만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나이 든 부모를 찾는 자녀들의 발길이 뜸하다고 한다. 부모가 가진 게 많아야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500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의 저자가 이번에는 한국의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 철학을 집중 분석했다. 딸을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키워낸 ‘원조 딸바보’ 피천득(수필가), 1000일 독서로 교보문고를 일으킨 신평재(전 교보증권 회장), 한국판 메디치 가문 전형필(문화재 수집가), 3대 정치인 가문 정일형 이태영(8선 국회의원·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 가문 등 3대에 걸쳐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각 분야의 인재를 배출해낸 11개 가문 이야기를 소개했다.

‘황제도 자식은 맘대로 못한다’는 말이 있듯 자녀교육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저자는 집 안에서 늘 책을 읽으며 모범을 보이는 아버지의 ‘멘토링’을 강조한다. 수필가 피천득과 간송 전형필은 해외로 유학 간 자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나 선배와 같은 멘토의 역할을 했다.

700년 역사의 영국 케임브리지대 최초로 형제 교수(장하준, 장하석)가 탄생하게 된 데는 집 안에서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아버지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역할이 컸다. 위당 정인보의 4남 4녀 자녀들도 “아버지가 남겨준 최고의 선물은 ‘글 읽는 소리’였다”며 “아버지가 납북된 뒤에도 아버지의 그 목소리를 평생 가슴에 담고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아버지가 밤늦도록 부재하면서 자녀교육의 한 축이 무너졌다”며 “집 안에서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춘기 자녀를 둔 집 안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겐 엄하지만 남에게는 인색하지 않고 돈을 제대로 쓸 줄 알도록 하는 자녀교육법도 눈에 띈다. 전형필은 24세에 10만 석이나 되는 재산을 물려받은 후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등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를 수집하고 쓰러져 가는 민족사학을 되살리는 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그러나 1945년 조국의 독립과 함께 더는 일본이 문화재를 약탈해갈 수 없게 되자 문화재 수집가 역할을 그만둔다. 저자는 “전형필의 아름다운 퇴장은 부자들의 귀감이 됐다”고 평했다.


현대판 명문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벌고, 높은 관직에 올라 권력을 누리고, 자녀를 정치인이나 유명 대학교수로 키우면 명문가일까. 저자는 “현대판 명문가란 사회와 잘 소통하고, 따뜻한 감정을 공유해온 가문에 주어지는 사회적 명성”이라고 정의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실용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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