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디스토피아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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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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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맨/김성중 지음/332쪽·1만1000원·문학과지성사

견고하게 돌아가는 세상도 작은 변화 하나에 큰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나사 하나가 빠져버리면 공룡같이 거대한 기계가 멈춰서는 것처럼. 이 소설집은 그런 일상의 변주를 끄집어낸다.

단편 ‘허공의 아이들’이 펼치는 상상력은 이렇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집이 살짝 떠오르고, 사람들은 점차 투명해지며 사라진다. 건물들은 날이 갈수록 하늘로 떠오르고 소년과 소녀 둘만 남긴 채 동네 사람들은 모두 증발한다. 마트에서 통조림과 생수를 가져와 집 안을 가득 채운 아이들은 하염없이 하늘로 떠오르는 집 안에서 공포심을 느끼고 서로 의지하지만 소녀는 먼저 세상을 떠난다.

단편 ‘그림자’는 또 어떤가. 개기일식을 계기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뒤바뀐다. 살인자의 그림자를 달고 다니게 된 평범한 남성은 해가 떠있는 동안 그림자의 지시를 받아 살인 행각을 벌이고, 그런 식으로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는 설정.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작가는 첫 소설집인 이 책을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가득한 에피소드들로 채웠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의 단편들은 어둡고 우울한 시공간을 창조한다. 작가가 바라본, 가까운 미래로도 해석할 수 있는 세상은 지옥의 묵시록과도 같다.

단편 ‘버디’도 종말론적인 미래를 펼쳐낸다. 평균수명이 140세까지 늘어난 미래 사회. 생산력이 떨어지고 수명만 늘어난 노인들은 사회의 골칫거리다. 정부는 돈 없는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려고 하고, 노인들은 테러리스트로 변신해 의약품을 구하기 위해 병원을 습격하는가 하면 노인들을 폄훼한 정치인들을 살해한다. 배경은 SF소설 같지만 작가는 노인들의 허무하고 무기력한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급격한 수명 연장이 축복이자 재앙일 수도 있다는 사회적 의제로 의미를 확장한다. 표제작인 ‘개그맨’은 웃을 수 없어 남을 웃기는 직업을 갖게 된 남성의 얘기를 그렸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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