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2001년 푸틴 대통령 한-러 정상회담

  • 입력 2008년 2월 27일 03시 00분


2001년 2월 26일 오후 10시. 어둠이 짙게 깔린 서울공항에 특별기 3대가 차례로 내려앉았다.

대통령 특별기의 문이 열리고 검은색 외투 차림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트랩을 밟았다. 러시아 대통령으로는 8년 만의 방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를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인 27일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남북한과 러시아 간 ‘3각 협력’ 토대를 마련했다.

러시아는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했고, 한국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러시아의 역할을 인정했다. 또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등 경제협력을 모색하는 데 합의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념적 적대관계’였던 한-러 관계가 ‘동반자 관계’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양국 정상회담의 성과만큼이나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 뒷얘기도 화제가 됐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대동한 매머드급 방한단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한국을 처음 찾은 푸틴 대통령은 다섯 대의 특별기를 동원했다. 대통령 전용기와 갑작스러운 고장을 대비한 예비기, 그리고 수행원을 태운 특별기가 당일 도착했고, 이에 앞서 의전 경호 선발대가 두 대의 특별기로 한국을 찾았다.

방한 기간에 푸틴 대통령이 이용할 특수방탄 벤츠 차량 두 대와 통신차량 한 대도 공수됐다. 통신차량은 인공위성 등 최첨단 통신설비와 군사작전 지휘시스템을 갖춰 ‘움직이는 크렘린’으로 불렸다.

수행단 규모도 공식 수행원 150명에 기자단 50여 명 등 200명이 넘었다. 해외 방한단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미국 대통령도 해외 방문 때 서너 대의 특별기를 대동하는 점을 고려하면 강대국으로서의 위용을 한껏 과시한 셈이다. 국빈 방문한 정상이 늦은 밤에 도착한 것도 예외적이었다.

당초 방문은 27일로 예정돼 있었지만 푸틴 대통령의 ‘올빼미형’ 집무 스타일이 일정을 앞당겼다.

늦게까지 업무를 보고 늦게 일어나는 푸틴 대통령이 아침 일찍 중요한 약속을 잡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 또 푸틴 대통령은 유도에 각별한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유도 명예7단증을 받는 등 2박 3일 일정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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