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새로운 우주’…자연은 신비를 벗는다

  • 입력 2005년 6월 1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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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뉴턴이 있게 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그 모든 것이 밝혀졌다!”(알렉산더 포프) 뉴턴에 이르러 우주는 ‘온순한 아이’가 되었다. 이때부터 우주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뉴턴은 단순하고, 언제나 성립되며, 아무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들을 한꺼번에 설명해 주는 수학적 관계를 알아냈다. 내일, 모레, 글피의 일들은 ‘다른 것은 필요 없고’ 현재의 일과 간단한 규칙만으로 결정된다. 뉴턴 법칙은 기술세계 전체를 지탱해 주는 논거였다. 그러나 1920년대에 이르러 뉴턴 법칙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원자와 원자 이하 규모의 세계를 탐험하던 물리학자들은 전혀 낯선 세계와 마주했으니, 뉴턴 물리학에서 그리도 분명하고 확실했던 물질의 입자들은 인과율이 아니라 확률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우주/로버트 러플린 지음·이덕한 옮김/328쪽·1만5000원·까치

물질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하려는 ‘경향’이었다. 불확정성 원리는 자연의 본성이었다. 양자역학을 배우는 것은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는 경험과 흡사했다.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진실이 되었다. 관찰자의 측정 행위가 인과관계의 진행에 개입한다니?

‘원자물리학의 아버지’ 닐스 보어와 밤새 토론을 벌이던 하이젠베르크는 신음을 토했다. “자연이 어찌 이리 부조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늘에서 꽃잎처럼 흩날리는 눈송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 분자들이 모여 ‘무질서의 바다’에서 ‘질서의 섬’을 빚어내는 자연의 신비다. 자연은 이렇듯 조직화를 통해 분자 수준에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상을 창발하며 스스로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뒤 토머스 쿤은 20세기 물리학의 출현을 패러다임의 전환과 연결시킨다.

이 책은 현대물리학을 견인했던 그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이다. 오늘날 과학혁명을 이끈 새로운 사상, 새로운 세계관으로의 초대다.

저자는 전체를 부분으로 쪼갠 뒤에 부분에 적용되는 자연법칙을 모아 전체를 이해하는 환원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단언한다.

자연은 단지 부분들의 합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전체의 본질적인 특성은 부분들의 집단적 조직화를 통해 비로소 창발(創發·emergence)된다. 전체는 부분을 초월하는 것이다. 나는 탄소지만, 나는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를 초월한다!

“자연은 초기 인상파의 그림과도 같다. 르누아르나 모네의 꽃밭 그림에 매료되는 것은 그림을 구성하는 물감 자국들이 일정한 모양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하지도 않지만, 전체로서 완전하기 때문이다. 붓 자국 하나하나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바로 조직화가 그림의 핵심임을 말해 준다.”

‘무질서의 바다’를 떠다니는 자연은 조직화를 통해 ‘질서의 섬’을 빚어낸다. 자연은 조직화에 의해 스스로를 드러낸다.

저자의 관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 사상의 핵심은 일리아 프리고진의 해박한 글을 통해 익히 알려져 왔다. 그럼에도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은 최신의 연구 결과를 다듬고 더욱 확장해 깊고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 속에 녹여 냈기 때문이다.

부분이 아닌 전체를 지향하는 저자는 현대사회가 극단적 환원주의와 ‘기술적 기회주의’에 절망적으로 중독돼 있다고 경고한다.

생명공학자들은 생명을 이해하기보다는 약품을 만들고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생명 현상을 화학 반응으로 분해하고 있으며, 정작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새 생물학은 엔지니어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통탄한다.

이제 과학은 완성되었다? 저자는 ‘과학의 종말’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다. 수학만으로 우주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수학은 인간이 만들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신비스러운 물질적 기적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과학의 신성한 임무인 것이다.

관찰할 수 없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물리학의 오랜 전통이 되어 왔으나 자연은 단지 스스로를 감추는 데 익숙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아무도 바람을 본 적이 없지만 나무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바람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물리학자로 ‘당대의 파인먼’으로 불리는 저자. 그런 그지만 작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으로 부임한 뒤 된통 세속의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는 실험실 안에서나, 실험실 밖에서나 천체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의 말을 되새기고 있을지 모른다.

“우주는 생각보다 이상할 뿐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이상하다….”

원제 ‘A Different Universe’(2005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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