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강득수/주5일 근무제 서둘다 망칠라

  • 입력 2001년 10월 3일 18시 45분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할 경우 내년 초부터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5일 근무를 시범 실시한다는 입장이다. 노사정뿐만 아니라 국민 사이에도 찬반 여론이 분분한데, 정부가 너무 앞서간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기업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에, 정부는 국내경기 활성화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때에 몇 년 뒤의 일을 앞당겨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에서는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따른 파급효과를 열거하며 노동계와 발을 맞춰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역설하고 있다. 근로자의 복리증진, 노동생산성 증가, 관광 레저산업의 발달, 에너지 절약, 고용창출 등이 주5일 근무제 시행의 근거들이다.

타당성은 있지만 정부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역효과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자꾸 비교하는데 체질과 증세가 다른 사람에게 같은 약을 먹여놓고 동일한 효과를 얻겠다는 생각처럼 위험한 발상이다.

정부와 노동계에서 말하는 파급효과가 제대로 발현되려면 국가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업이 건실성을 유지한 상태라야 가능하다. 한국 기업들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몇 품목을 빼놓고는 경쟁국에 크게 뒤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향후 한국기업들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되리라는 전망은 어느 보고서에도 나오고 있지 않고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으로 인해 세계시장에서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경영환경이 열악한 중소 제조업체에는 주5일 근무가 기업경영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해마다 상승하는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지기수의 중소업체들이 적자경영을 하고 있다.

주5일 근무가 세계적 추세이고, 우리의 노동정책도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함은 국민복지를 지향하는 국가정책에 비춰볼 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가 노사정의 합의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유도하거나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현재 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주5일 근무를 하고 있고, 국내 기업들도 더러는 토요일은 휴무를 하거나, 직원들간에 순환제로 격주 휴무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자기 경영환경에 맞는 근무제를 스스로 채택해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사의 지향과 이해가 일치하기란 쉽지 않다.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노사의 시각도,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부의 입장도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노사의 이해를 조정, 절충해 새로운 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정부의 역할이다.

주5일 근무제 도입의 취지는 법정근로시간을 주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목적이라면 기업체마다 경영환경이 다른 만큼 주40시간을 기준으로 근무일수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자. 주5일 근무로 토요일을 쉬면 금요일부터 사실상 주말이 된다. 주말 분위기에 따라 노동생산성 저하도 예상되는 만큼 기업에 따라 ‘주6일 40시간 근무’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주5일 근무제 도입과 시행에 정부는 좀 더 신중한 자세를 보여줄 것을 당부한다.

강득수(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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