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조상들 해학 담긴 口傳 엮은 '오입쟁이 사기꾼…'

  • 입력 2001년 8월 5일 18시 54분


어리숙한 손님에게 바가지 씌우기로 악명 높은 서울 종로 포목점의 곽초시 가게에 어딘가 모자란 듯한 선비와 하인이 들어선다. 곽초시는 맏딸 혼수감을 산 시골선비에게 300냥을 불러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다.

순순히 이 말을 믿은 선비는 마침 돈을 안 가져 왔다며 하인에게 “집에 가서 얼른 300냥을 가져 오라”고 분부를 내린다. 선비는 손을 다쳤다며 곽초시에게 ‘부인, 이 하인에게 300냥을 주시오’라는 글귀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다.

곽초시가 쓴 글을 받아든 하인이 금새 300냥을 가져왔다. 선비를 돌려보낸 뒤 기분이 좋아진 곽초시는 술 한잔을 걸치고 집에 들어가 바가지 씌운 일을 부인에게 자랑했다. 그 때 부인이 말한다. “그건 그렇고, 여보, 아까 왜 300냥을 달라고 했소.”

상상을 뛰어넘는 절묘한 반전, 조상들의 해학이 담긴 구전(口傳)은 언제 봐도 재미있다.

만화가 조주청씨가 7년 만에 내놓은 만화책 ‘오입쟁이 사기꾼 그리고 수전노’(아라크네·8800원)에는 선인들의 지혜와 해학이 담긴 67편의 짧은 만화가 실려 있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남을 사기 치려다 거꾸로 당하는 사기꾼, 돈 한 푼에 벌벌 떨다가 막대한 돈을 물어내는 수전노, 여자를 밝히다가 된통 당하는 오입쟁이 등 온갖 인간 군상의 행태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조씨가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30년 만에 다시 자료를 모아 만화로 엮어냈다. 유머와 해학의 차이? 유머는 듣고 나면 ‘깔깔깔’ 웃지만 해학은 듣고 나면 ‘낄낄낄’ 웃는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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