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톡톡 튀는 업체 전화번호들

  • 입력 2009년 5월 26일 02시 56분


항공사는 2626, 세탁소는 3989

중국에선 ‘8’자가 들어간 휴대전화 번호가 비싼 값에 팔린다고 합니다. 8의 중국어 발음이 ‘돈을 벌다(파차이·發財)’라는 말의 ‘파(發)’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8이 네 개 들어간 번호가 약 5000만 원에 팔린 적도 있답니다.

우리는 어떤 번호가 인기일까요. 한국에선 휴대전화 등 개인 전화번호는 음성적으로만 거래됩니다. 그래서 1588, 1544, 1599 등으로 시작되는 전국 대표번호를 살펴봤습니다. 이 번호는 주로 기업들이 사용합니다.

SK텔링크 등 통신업계에 따르면 가장 인기 있는 번호는 당연히 같은 숫자가 반복돼 기억하기 쉬운 ‘1111’ ‘1000’ 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좋은 번호는 희소성이 강합니다. 게다가 일반 번호보다 800배나 더 비싸죠. 그래서 이를 대체하기 위한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연상시키는 번호가 인기입니다. SK에너지의 고객센터 뒷자리 번호는 ‘0051’입니다. 기름을 뜻하는 영어단어 오일(Oil)을 이용해 업종을 부각했습니다. 제주항공의 예약센터 번호는 비행기 이륙을 뜻하는 ‘2626’이고 사단법인 대한경호협회는 범죄신고 긴급전화를 연상시키는 ‘0113’입니다.

병원은 ‘치료’와 발음이 비슷한 ‘75’, 대리운전이나 택배업체는 ‘빨리’와 발음이 비슷한 ‘82’가 들어간 번호를 좋아합니다. 부동산 등 매매 관련 업종은 ‘4989(사구팔구)’나 ‘545(오∼싸고)’ 등의 번호를 선호한다고 하네요.

음식점은 ‘1662(일류요리)’. 치과는 ‘2875(이빨치료)’, 세탁소는 ‘3989(삶고빨고)’, 종교단체는 ‘9191(구원구원)’, 슈퍼마켓은 ‘4141(세일세일)’ 등 재미난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이런 골드번호 경쟁을 보면 어떤 사업이 호황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2003, 2004년 대리운전 업체 창업 붐이 일면서 이 업체들이 좋은 번호를 싹쓸이했습니다. 이들은 ‘1500(1만5000원)’ 등 서비스의 특징을 내세운 번호를 선호했습니다. 2007, 2008년엔 대부업체들이 좋은 번호를 확보했습니다. 대부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기 위해 ‘7979(친구친구)’나 ‘1004(천사)’ 등을 선호했죠. 이후에 상조업이 성장하며 새로운 번호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1004(천사)’나 ‘1009(천국)’ 등을 선호하는 반면 죽음(死)을 연상케 하는 숫자 4는 반드시 피한다고 하네요.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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