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누구나 비밀은 있다’ …성과 웃음의 사랑게임

  • 입력 2004년 7월 29일 16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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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올댓시네마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로맨틱 섹시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비밀’은 성(性)과 웃음의 균형이다.

한 남자와 세 자매의 사랑은 한국 영화에서는 가장 ‘발칙한’ 수준의 소재다. 만약 이 작품이 성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었다면 그저 야한 영화 정도로 분류됐을 것이다. 반면 웃음으로 일관했다면 보여주지는 못한 채 ‘입으로만 떠드는’, 성에 관한 농담으로 도배한 여러 영화 중 하나로 묻혔을 것이다.

‘누구나…’는 한국에서 상업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감독 배우 제작자)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수밖에 없는 성에 대한 접근법과 고민의 수준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선택한 성과 웃음의 ‘칵테일’은 황금비율은 아니라도 꽤 만족스러운 ‘맛’을 낸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완벽한 ‘매력남’ 수현(이병헌)과 세 자매가 각기 간직한 비밀이다.

영화는 ‘여자의 첫사랑을 만족시키는 것은 남자의 마지막 사랑뿐이다’(미영·김효진), ‘사랑은 벼락처럼 다가와 안개처럼 사라진다’(선영·최지우), ‘오, 자유! 그대의 이름으로 죄악이 저질러지고 있나니’(진영·추상미) 등 세 자매에게 어울리는 격언을 자막으로 보여주면서 이들의 캐릭터와 앞으로 다가올 ‘사랑게임’의 색깔을 암시한다.

미영의 표현에 따르면 머리, 지갑, 외모가 꽉 찬 것도 모자라 성격도 ‘쿨’하고 섹시하기까지 한 수현이 세 자매 앞에 나타난다. 그는 ‘쇼핑은 사랑이 아니지만 사랑은 쇼핑’이라고 주장하는 자유분방한 막내 미영에게 ‘솔직히 널 갖고 싶지만 네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문학소녀 타입의 둘째 선영에게는 지적인 모습으로, 남편의 무관심에 지친 유부녀인 첫째 진영에게는 그녀의 자존심을 일깨우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극중에서 수현은 세 자매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모두 넘어서지만 그 섹스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유머러스한 삽화에 가깝다. 소재가 파격적일수록 웃음은 강해져야 한다는 제작진의 현실적 판단 때문이다.

이 작품의 ‘영화적 오르가슴’은 화면이 아니라 한 남자를 만나면서 변해가는 세 자매의 심리와 감각적인 대사들이다. 영화는 미영이 전체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수현에게 프로포즈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나머지 자매들의 ‘같은’ 남자에 대한 ‘다른’ 기억들을 불러들인다.

영화에서 이병헌은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것은 현실의 이병헌, 영화배우로 형성된 이미지, 극중 수현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생긴 것으로 바람둥이지만 거부하기 어려운 그만의 향기다. 아일랜드 영화 ‘어바웃 애덤(About Adam)’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가문의 영광’의 김영찬, ‘실미도’ ‘국화꽃 향기’의 김희재가 각색을 맡았다. ‘걸어서 하늘까지’ ‘게임의 법칙’ ‘라이방’의 장현수 감독 연출. 30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대사 엿보기▼

△“언닌 아직도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나본데 걔네들은 언니처럼 얌전한 여자 안 만나. 왕자 만났던 애들 한번 따져볼까? 백설공주는 난쟁이 일곱 명하고 놀던 날라리지, 신데렐라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몰래 파티 갔다가 왕자 만난 거 아냐? 숲 속의 미년지 뭔지는 집 놔두고 숲 속에서 자빠져 자다가 왕자 만났고. 다 비정상적인 얘들이야.”(미영, 고지식한 둘째 언니 선영이 답답하다며)

△“가족끼리 무슨 섹스냔다. 마누라랑 하는 게 근친상간 같다는 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니.”(진영, 요즘 부부관계를 묻는 미영의 질문에 남편의 말을 옮기며)

△“(아쉬운 듯) 근데요…. 키스는 좀 더 해도 되는 데….”(선영, 수현이 자신의 옷 단추를 다시 채워주자)

△비밀이 있어야만 행복한 건 아니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비밀을 가질 수도 있다. 나는 이 가족에게 한 가지씩 비밀을 주었고, 그들은 비밀의 크기만큼 행복해졌다.(수현의 마지막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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