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연극무대에 선 기업광고

  • 입력 2008년 5월 15일 02시 59분


연극 시작 직전, 무대는 암전. 갑자기 빨간 망토 소녀와 늑대로 분장한 배우가 나타난다. 떡을 달라고 위협하는 늑대에게 빨간 망토의 소녀는 ‘햇반’을 주며 위기를 벗어난다.

16일 막을 올리는 연극 ‘평범한 주부의 마트 습격사건’(극단 로뎀)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빨간 망토 소녀는 연극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 이 공연이 CJ제일제당의 제품인 ‘햇반’의 홍보극을 펼치는 이유는 CA(Commercial Acting)라는 기업 협찬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 제일화재와 협약한 극단 로뎀은 공연 시작 전 기업 광고극을 5분가량 공연한다. 그 대가로 이들은 유료 관객의 티켓 가격 50%를 기업체에서 받는다. ‘평범한…’의 경우 본래 책정된 티켓 가격은 2만 원이지만 CA를 도입해 1만 원으로 낮췄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연극계가 협찬을 받아 공연을 통해 기업 홍보를 하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최근 가장 활성화된 것이 PPL(product place-ment)이다. 이것은 일종의 소품 지원이다.

현재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애경에서 협찬을 받아 극에 필요한 세탁용 세제와 관객용 상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협찬받은 세제를 무대 위 세탁기에 올려놓고 간접광고를 한다. 6월 막이 오르는 ‘쉬어 매드니스’는 미용실 거울 앞에 도브에서 협찬받은 샴푸나 면도크림 등의 제품을 올려놓을 예정이다.

PPL이 지나치면 연극의 맛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다 보니 관객의 시선을 방해하고, 대사에 제품 이름을 등장시킴으로써 대사의 묘미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극단 로뎀의 최용진 기획팀장은 CA가 PPL의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공연 중간에 무리한 PPL로 흐름을 방해하기보다 공연 전 CA 광고를 보여준 뒤 극에만 집중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남기웅 서울연극협회 사무국장은 “일정 금액을 받거나 물품을 받는 게 아니라 유료 관객 수에 비례해 티켓 가격을 보조받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CA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본공연 시작 시간에 맞춰 올려지는 터라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은 억지로 광고극을 보아야 한다. 관객들은 돈을 주고 공연을 보러 온 것이지 기업 CF를 보러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CA가 지나치면 공연에 대한 인상보다 광고만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우려가 나오자 최 팀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의 반응이다. 반응에 따라 광고 편수와 시간을 적절히 조절하겠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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