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영옥 ‘행방’

  • 입력 2007년 12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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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 -이영옥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꽃잎 한 장이 방충망에 붙어 어깨를 떨고 있다

아무도 없는 여기서 한참이나 울었던 것 같다

저 슬픔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읽던 책 속으로 다시 시선을 내리는데

아까보다는 조금 더 위쪽으로 자리를 옮겨

눈물을 찍어대고 있다

꽃이 열매에게 제 자리를 내어줘야 할 때

어디로 뛰어내려야 할지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을 때

꽃이 고운 제 빛깔을 거두며 어두워지려할 때

옆에서 아무도 다독여 준 이가 없었구나

이쪽 철망에 걸러진 삶이

저쪽 철망으로 몸을 끼워 보지만

세상은 빈틈없이 촘촘한 봄날이었다

- 시집 '사라진 입들'(천년의시작) 중에서

꽃잎 하나가 가는 길도 저럴진대, 그 위로 날던 나비는 이 엄동에 어디로 갔을까요. 꽃잎을 두드리던 바람과 빗방울은, 발밑에 뒹굴던 낙엽과 열매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폭설에 갇혀 밤새 울던 큰 짐승들과 어깨를 다독이며 자장가 불러 주던 부모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우주는 아무리 성글어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법이니 어딘가 안녕히 계시겠지요. 모든 빛깔을 거두었던 검은 땅에서 새싹이 돋듯, 빈틈없이 촘촘한 봄날 화사하게 다시 오겠지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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