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구본용/자녀에게 화풀이말아야

  • 입력 1999년 12월 26일 21시 23분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이 체험을 바탕으로 쓰는 이 칼럼은 매주 월요일 게재됩니다. 10대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는 청소년보호위원회 신가정교육팀(02―735―6250)으로 연락하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 출석을 부를 때 대답을 못하는 대학생이 있었다. 초성발음에 장애가 있는 여학생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출석을 부를 때 대답하는 연습을 수없이 했으나 정작 자기 차례가 되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학생은 수업이 끝날 때면 찾아와 기어들어가는 작은 소리로 “교수님 저 왔는데요”라고 출석을 확인하곤 했다.

그 여학생과 상담 과정에서 어린 시절 충격적인 경험으로 말더듬이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생이 네다섯 살 때 부모님이 심한 갈등을 표출했다. 부모님은 자주 다투었고 그 때마다 학생은 불안해진 기억을 갖고 있다. 어느 날 학생은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 어머니로부터 매를 심하게 맞았다. 아이는 너무 겁이 나 화장실로 숨었다. 어머니가 화장실까지 뒤따라와 세탁기의 고무호스를 빼 때리려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갖고 있었다. 학생의 어머니는 그 때 아이의 얼굴에서 남편의 얼굴이 보여 놀라 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여하튼 그 일은 학생을 말더듬이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것을 경험한다. 그런 경험 속에 묻어 있는 감정들 중에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저장된다. 부모 중에 자녀들을 야단치고 혼을 내면 낼수록 화가 더욱 커지는 부모가 있다. 마음 속에 저장된 불편한 감정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면 네 단계가 있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아이가 잘못을 하니까 화를 낸다. 이 때 아이는 어머니의 화난 모습을 수용하고 꾸지람을 감수한다. 두번째 단계는 아이가 하는 짓이 꼭 자기 남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배우자에 대한 평소에 해결되지 않은 불편한 감정을 아이에게 투사한다. 이때 아이는 부모가 화를 계속 내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한다. 세번째 단계에서 어머니는 시집식구나 친정식구에 대해 해결하지 못한 원망감을 아이에게 표출시킨다. 하는 짓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이때쯤이면 아이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생긴다. 마지막 단계에서 어머니는 불행한 팔자를 한탄하며 아이에게 화를 낸다. 이 때가 되면 아이는 분노와 좌절감에 자신을 잊고 싶어진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좌절과 분노는 관리를 잘못하면 대물림을 한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무엇에 좌절돼 있고 무엇을 원망하고 있는지를 알아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관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구본용<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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