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사장님도…교수님도…요리 열풍

  • 입력 2002년 11월 15일 18시 18분


12일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 사회교육원 안에 있는 프랑스 최고(最古)의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의 한국분원 실습실.

‘겨자토끼요리’를 만들기 위해 용감하게 토끼 등살을 써는 사람들 중에는 숙달된 요리사나 가정주부 대신 요리배우기에 나선 전문직 직장인들이 훨씬 많다는 게 학교측의 귀띔이다.

“제가 만든 요리를 고객접대에 이용하고 싶어요. 차별화 된 비즈니스 전략이 되겠죠.” (이숙민씨)

숙명여대와 ‘르 꼬르동 블루’가 공동으로 개설한 ‘르 꼬르동 블루’의 한국분원은 10월부터 1기생 60여명을 맞아들여 요리교육을 실시 중이다.

1기생 중에는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한 ‘탑웨딩’ 사장 이숙민씨(32), 미국 뉴욕 맨해튼 음대를 졸업한 ㈜써미트 사장 이경하씨(27),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학교를 졸업한 바이올리니스트 박한나씨(22), 연예인 진미령씨 등을 비롯해 전 현직 기업체 최고경영자와 스튜어디스, 미술작가, 연구원 등이 포함돼 있다. 수강생 중 전문직 종사자가 60%에 이른다는 게 학교측의 설명이다.

1학기 수강료가 요리과정은 630만원, 제과 제빵과정은 585만원이 드는 등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이처럼 비(非) 요리사 수강생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

이른바 ‘푸드인텔리’족(族)이 늘고 있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최근20, 30대 해외유학파들과 지식층이 요리 배우기에 심취하며 ‘요리사’로 전업하거나 트렌디 레스토랑을 차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스타타워’ 빌딩에 10월 문을 연 ‘델리 비츠’ 랩샌드위치점의 노혜원 사장(27)도 ‘푸드인텔리’이다. 미국의 보스턴 칼리지(미술사 전공)를 졸업한 뒤 건강음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가벼운 질병도 치료할 수 있는 ‘힐링푸드(치유음식)’를 개발해 요리사와 경영인으로 나서고 있다. 노 사장은 “유학 기간에 눈여겨봐 둔 음식점을 벤치마킹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라 퀴진’ 요리학원은 학원 강사 25명 중 8명이 미국과 프랑스 유학파 출신 29∼33세의 여성이다. 전직 첼리스트, 조소가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조리사자격증을 따는 고학력자도 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 따르면 양식 일식 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응시한 사람은 98년 3만9100명에서 2001년 6만9548명으로 늘었으며 올해는 8만여명이 지원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지난해와 올해는 대졸 이상 고학력자의 지원이 예년에 비해 30% 정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단체로 조리사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는 인터넷 식도락 동호회도 많다”고 말했다.

요리가 ‘취미’인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이명천(李明天) 교수는 “인텔리층이 요리에 열광하는 것은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으로 보인다”며 “요리를 하면서 예술작품을 만들고 감상할 때와 비슷한 희열을 느끼고 소외감도 덜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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