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통신/파리에서]조혜영/「따르라기의 악마」

  • 입력 1999년 7월 16일 19시 05분


▼「따르라기의 악마」조르주 올리비에 샤토르노 지음/그라세출판사/400쪽▼

프랑스사회에서는 한 소설이 정치적 이념이 서로 다른 신문들로부터 똑같이 호평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최근 발표된 조르쥬 올리비에 샤토르노의 소설 ‘따르라기의 악마’는 그 흔치 않은 평가를 얻고 있다. 좌파 신문인 ‘르 몽드’와 우파의 ‘피가로’로부터 한결같이 절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

47년 파리에서 태어난 저자는 73년 ‘작은 보트의 미치광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문단에 등장했다. 그의 작품주제는 꿈과 현실 사이의 심연을 환기시키는 것들이다. 르 노도 문학상을 받은 ‘몽상의 권능’(1982)은 고립과 침묵에로의 도피를,‘유리성(城)’(1994)은 십자군 원정시대의 한 음유시인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따르라기의 악마’의 주인공, 샤를르 오노레 밀로는 시인보험협회의 과장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영적인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것.

어느날 고서점에서 16세기의 악명높은 인간도살자 아그리파 드 코스카스의 참회록을 발견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초현실의 사냥꾼이 된다. 이 참회록에는 아그리파가 화살을 쏘아 천사를 살해했으며 죽은 천사의 배에서 날개 달린 태아를 꺼내 유리병 속에 봉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천사의 유물을 찾으려는 인간 밀로와 증거를 찾아 없애려는 악마의 사자(使者) 이자카롱과의 긴박한 싸움이 전개된다. 악마의 무기는 원통형으로 생겨 손으로 만질 때마다 ‘따르륵’ 소리가 나는 장난감, 따르라기. 권력 명예 쾌락 등의 욕망에 약한 인간들을 따르라기 소리로 유혹한다.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소설들은 유치하거나 공허하며 인위적이고 문학성과 상상력이 부족하기 쉽다. 그러나 ‘따르라기의 악마’는 이 약점을 극복했다. 저자가 그린 초현실의 세계는 바로 선과 악이 싸우는 인간의 섬세한 내면세계다. 저자는 현실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묘사로 이 내면을 그려내고 있다. 16세기 종교전쟁부터 20세기 나치까지 서양의 잔혹한 과거사와 현대인의 허망한 욕망을 해학으로 풀어냄으로써 저자는 서양근대사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조혜영<프랑스 국립종교연구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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