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美드라마 열풍 이끄는 한국계 혼혈작가 모니카 메이서

  • 입력 2008년 2월 4일 02시 45분


美 드라마에 한국계 자주 등장시켜요

‘로스트’ ‘프리즌 브레이크’ 등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에는 한국계 작가의 손길이 담겨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30대 중반의 여성 작가 모니카 메이서 씨가 이 드라마들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연속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올스타에 선정된 하인스 워드처럼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백인 남성 위주인 드라마 작가 세계의 벽을 뚫고 자리를 잡았다. 그는 2005년 ‘로스트’로 에미상, 골든글로브상을 비롯해 미국작가조합이 주는 최우수 작가상을 받았다. 우리 시각으로 보면 미국 방송계의 ‘하인스 워드’인 셈이다. 메이서 씨는 워드를 “나의 영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 드라마 기획사의 초청으로 방한한 그를 2일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메이서 씨는 배우인 흑인 남편 사이에서 낳은 10개월 된 딸, 어머니와 함께 모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고향에 온 기분이에요. 미국에서도 새해마다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었는데 드디어 한국에서 먹을 수 있네요. 사극의 배경인 궁궐도 실제로 가 보니 놀랄 정도로 아름다워요.”

그가 취재부터 스토리 구성, 집필까지 담당한 드라마는 ‘로스트’ 시즌1의 에피소드 7, 8편과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의 에피소드 7편, 시즌2의 에피소드 6, 11편 등. 미국 드라마는 작가 7∼10명의 공동 작업으로 이뤄지며 매회 에피소드는 수차례 회의와 상호 간 경쟁 및 합의를 통해 결정된다. 미드 특유의 스토리의 힘은 이런 데서 나온다고 한다. 메이서 씨는 첫 작품인 ‘24’에서 보조 작가로 참여한 이래 ‘로스트’에서 정식 작가로,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스토리 에디터 겸 프로듀서로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그는 1960년대 초 주한미군 재정담당 장교로 한국에 왔던 아버지와 이화여대 학생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두 분은 영어와 한국말을 서로 가르쳐 주다 만났대요. 그래서 둘만의 비밀 얘기를 할 때마다 한국말로 하시던 기억이 나요.(웃음) 언니는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지만 저는 대학 때 교회에서 배운 몇 마디가 전부예요. 3년 안에 대화하고 글을 쓸 정도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요.”

특히 그는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외할아버지가 월남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며 “한국의 아픈 현대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쓴 드라마 곳곳에는 한국계 작가의 흔적이 있다.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2에 부통령의 최측근으로 등장하는 빌 킴이라는 역할은 그가 만든 캐릭터인데 ‘월터 천’이라는 중국인으로 설정된 것을 한국식으로 바꿨다. 악역이긴 해도 힘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라고.

“로스트에는 한국인 커플 둘과 흑인 세 명이 등장해요. 작가들이 백인 남자가 대부분이어서 그들의 문화나 생각을 잘 모르죠. 그럴 때마다 흑인과 한국인의 생각을 저한테 물어봐요. 소수 인종을 그리는 부분에는 제 목소리가 들어가 있답니다.”

그는 최근 로스앤젤레스의 한국방송전문 케이블TV에서 본 드라마 중 ‘커피프린스 1호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의 캐릭터는 감정이 풍부해 울거나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오면 설거지하다가도 멈추고 볼 정도예요. 반면 미국 드라마는 캐릭터를 둘러싼 사건들이 워낙 강해요. 차가 폭발하거나 살인사건이 일어나거나. 인물보다 사건 중심이죠.”

그를 초청한 드라마 제작사 ‘플랜비’는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국계 미국인의 성공담을 담은 ‘자이언트’를 만들고 있다. 이 작품에 스토리 컨설팅을 하고 있는 그는 “한국 드라마를 써 보고 싶다는 꿈이 이뤄져 기쁘다”며 “한국계들이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강한 민족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혼혈이 차별받는 현실은 슬프지만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모니카 메이서:

△뉴욕 배사 칼리지 졸업

△뉴욕 크로스로드 극장, 샌디에이고

올드 글로브 시어터 등에서 감독 및

조감독으로 활동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독립영화사

‘파크 데이’의 공동 제작자

△월트디즈니 TV 만화영화부에서

기획담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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