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방송문화 권력의 ‘안마당 지키기’

  • 입력 2008년 3월 14일 21시 45분


노무현 정부에서 방송문화 권력을 향유하던 언론단체들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에 대한 공세에 집중하고 있다. 낙마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깊은 상처를 내서 최 씨가 방송위와 통신위 그리고 정보통신부 일부를 합한 새 기구의 위원장이 되더라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48개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됐다는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선생(멘터)인 최 씨는 국회 청문회를 받을 자격이 없다”며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문제 삼는다. 언개련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인 신문법을 만들라고 입법청원을 하고 노무현 정권의 언론탄압을 거들었던 단체다. 언개련 인사들은 노무현 정부에서 방송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상임위원과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의 임원을 돌아가며 맡았다. 정권 교체로 안마당을 내주자니 상실감(喪失感)이 클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방송문화 권력을 장악하고 단물을 빨던 사람들이 지금 최 내정자에 대해 벌이고 있는 ‘검증’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못하다.

언개련은 논평을 통해 ‘최 씨는 신문(동아일보) 출신으로 방송과 통신에 관련된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신문 출신이라서 방송통신 전문성이 없다는 논리라면 한겨레신문 출신인 정연주 KBS 사장의 전문성 부족과 작년에 279억 원 적자를 내고 직원의 80%로부터 배척받는 무능경영에 대해서는 왜 침묵을 지키는지 모르겠다.

최시중 위원장 낙마 총공세

최 씨에 대한 파상적인 검증 공세는 좌파 언론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일부 신문과 공영방송이 확산시키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유재천 한림대 교수는 “이들의 행동은 자기네들의 존재가 위태로워진 데서 나오는 자기방어다. 본래 순수하지 않은 정치단체다. 신문기자 못 돼 한 맺힌 사람들도 있고, 논문 한 편 제대로 없는 학자들도 섞여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 씨의 재산(78억6000만 원)과 부동산을 연결시켜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기에 바쁘다. 공정한 검증을 하려면 재산 총액만 따질 일이 아니다. 그가 여론조사회사인 한국갤럽의 최고경영자(CEO)를 13년 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재산의 가장 큰 부분은 신한은행에 위탁한 20억7800만 원을 비롯한 예금 33억 원이다. 이 돈은 지난해 한국갤럽을 퇴직하면서 지분(持分)을 매각한 대금이다.

이들이 제기한 네거티브가 판을 쳐서 최 위원장의 포지티브한 측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 씨는 ‘녹명(鹿鳴)’이란 말과 ‘내명(內明)’이란 말을 자주 곱씹는다고 한다. 녹명은 사슴의 울음이다. 사슴은 먹이를 발견하면 소리를 내 울어 먹이를 찾지 못한 다른 사슴들을 부른다. 그는 “평생 모은 재산이고 말년에 맡는 관직이지만, 녹명의 정신을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내명은 겉으로 폼 잡지 않고 속으로 슬기롭다는 의미다.

한국갤럽 CEO로서의 경험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연마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여론조사는 주관적 가치가 개입하면 결과가 왜곡되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과 여론조사 의뢰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생명이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판의 고수(高手)들이 김대중(DJ) 씨의 당선은 무망(無望)하다고 볼 때 그는 한국갤럽이 DJ의 당선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참고로 그는 경북 포항 출신이다.

칠순에 접어든 최 씨는 이순(耳順)이라는 말도 좋아한다. 그는 “이 말은 나이에 따라 어감(語感)이 다르다”며 “전문가들의 견해와 반대 의견을 경청해 방통위의 정치적 독립성을 손상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위원장을 포함한 방통위원 5명은 대통령 임명 2명, 국회 추천 3명(야당 추천 2명)으로 구성돼 실제로 독단으로 흐르기 어렵다.

공영방송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방송통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방송통신 정책의 최고 지휘관은 과거의 기술에 편향(偏向)을 가진 전문가보다 다양한 견해를 경청해 ‘이순’하는 제너럴리스트가 더 나을 수 있다. 방송통신 같은 첨단 분야에서는 누구라도 꾸준히 ‘이순’하고 ‘내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세월 공영방송은 기계적 형식적 중립조차 지키지 못하고 노무현 정권 코드의 확산에 앞장섰다. 왼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인물이 새 방통위원장이 되고, 새 KBS 사장이 되는 게 옳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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