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박자경/새싹 키우기

  • 입력 1997년 3월 16일 09시 44분


봄이다.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부모들은 이 봄이 어느 때보다 환하고 신선할 것이다. 그러나 설렘도 잠깐, 막상 학교에 발을 들여놓고는 그 때부터 실망이다. 아이나 부모들로서야 단 한 번뿐인 큰일이지만 학교로서는 봄이면 으레 치르는 연례 행사이기 때문이다. 예비 소집이래 봐야 안내판도 변변히 없고 접수처라고 옹색하기 이를 데 없어 대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그러나 걱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첫 아이를 입학시키는 학부모가 바로 「선생의 밥」이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누구네는 봉투를 안 바쳐서 아이가 한 달 동안 청소만 했다는 둥, 촌지는 사절이지만 교실 에어컨은 환영이란다는 둥, 하는 선배 부형들의 겁나는 오리엔테이션도 접하게 된다. 학교가 아니라 숫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용기를 배우며,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쌓아 가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이 단지 부모나 학생들만의 바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출세를 하는 것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무슨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닌 이 땅의 새싹 키우기를 소망했던 젊은이, 지금은 교단에 선 우리의 선생님들이 꾸었던 꿈 역시 그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 꿈을 믿고 싶다. 아이들 얼굴만 봐도 촌지의 두께를 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나이든 선생일수록 노회해져 더 그런다고 생각하기 싫다. 오늘도 교실문을 열며 저 어린 엉터리꾼들을 괜찮은 사람으로 키워야 할텐데 걱정하는 선생님들의 소박한 꿈을 믿기로 한다. 그것이 신주머니 흔들며 달려가는 아이의 참된 교육을 위해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첫번째의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자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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