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국제경기 꿀맛 첫승…韓 첫女야구팀 안향미 감독

입력 2004-11-30 18:41수정 2009-10-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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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언니’ 선수들에게도 ‘호랑이 감독님’으로 통하는 안향미 비밀리에 여자야구팀 감독은 “내년 미국에서 열리는 제5회 세계여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올해 패배의 충격을 씻겠다”고 다짐했다. 원대연기자
지난달 27일 토요일, 서울 여의도 한강 둔치. 스포츠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 한두 명씩 모여든다. 농구도 축구도 아닌 야구 유니폼. ‘BIMYLIE(비밀리에)’라는 팀 로고가 선명히 박혀 있다. 둘러메고 온 가방에서 배트와 글러브가 나온다.

청백 팀으로 갈라 연습 시작. 20여 명의 여성 선수들은 안타도 잘 치고 날아오는 볼을 글러브로 척척 받아낸다. 예상보다 훨씬 실력이 좋다. 땀범벅이 된 선수들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넘친다. 옆에서 운동하던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이 “제법 잘 하는데…” 하며 신기한 듯 쳐다본다.

한 젊은 여성이 열심히 경기를 지휘하고 있다. 안향미(安香美·23) 감독.

“며칠 전 한일 대항전에서 이긴 뒤 사기가 높아졌습니다. 비록 일본 약체 팀과의 친선 게임이었지만 국제경기에서 승리한 것은 창단 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한마디로 일취월장했죠.”

‘그때’란 7월 일본에서 열린 제4회 세계 여자야구 선수권대회. 당시 ‘비밀리에’는 0:53(일본), 0:27(캐나다), 6:16(홍콩)이라는 참담한 점수차로 완패했다. 하지만 그 뒤 선수들은 깨지고 구르며 맹훈련을 했고, 그 결과 ‘국제대회 첫 승’이라는 성과를 일궈낸 것.

‘Baseball Is My Life(야구는 내 인생)’의 머리글자를 딴 ‘비밀리에’는 국내 최초의 여자야구팀. 안 감독이 지난해부터 인터넷(baseball.gameone.co.kr/BIML)을 통해 선수를 모집해 올 3월 팀을 창단했다. 프로와 아마추어 구단에는 아직 여자야구팀이 없고 사회인 부문에서는 ‘비밀리에’ 이후 2, 3팀이 생겨났다.

안 감독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그는 대한야구협회에 등록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야구선수다. 중고교 시절 ‘홍일점’ 야구선수로 활약한 그에게 “어떻게 남자선수들 사이에서 버텼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남자선수들과 야구하는 게 너무 좋아 졸업하기 싫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 야구선수 동생을 연습장에 데리고 다니다가 우연히 야구를 접한 그는 축구나 골프를 해보라는 주위 권유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떠나지 않았다. 국내 프로야구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진 그는 일본 세미프로 여자야구팀 ‘드림윙스’에서 2년간 4번 타자로 활약하다 ‘비밀리에’ 창단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보면 일본에서 선수로 활약하는 것이 더 좋았겠지요. 그러나 야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 중의 하나이면서도 여성은 관중이나 치어걸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야구를 보는 여성이 많다는 건 그만큼 하고 싶어 하는 여성도 많다는 게 아닐까요.”

현재 ‘비밀리에’의 선수는 45명. 세계선수권대회 대패(大敗) 이후 오히려 유명세를 타 팀원이 크게 늘었다. 태권도 사범, 간호사, 컴퓨터 컨설턴트, 대학 조교, 전업 주부 등 다양한 직업의 선수들은 주말이면 ‘야구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6, 7시간씩 훈련하고 남자팀과 연습경기도 갖는다. 운영비는 선수들이 월 2만원씩 내는 회비로 충당한다.

열정으로 치자면 ‘비밀리에’ 선수들은 프로 못지않다. 주부 선수들은 이제 시부모까지 모시고 연습장에 나타난다. 부상 선수들도 연습장에는 반드시 나온다.

그러나 열정만으로 야구를 할 수는 없는 일. ‘비밀리에’의 실력에 대한 안 감독의 평가는 냉정하다. 남자 중학교 야구팀 실력에도 못 미친다는 것. 맞서 싸울 여자팀이 거의 없다보니 실력이 향상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비밀리에’의 미래는 밝다는 게 그의 평가다. 야구는 무엇보다 ‘머리’가 필요한 운동인데, 여성은 파워와 순발력에서 남성을 따라잡기 힘들지만 ‘센스’로 체력의 열세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는 것.

“2012년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여자야구가 채택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자야구의 불모지나 다름없습니다. 프로, 아마, 사회인 야구 가릴 것 없이 많은 여성 팀이 생겨나 리그제가 활성화되는 그날까지 ‘파이팅’ 할 겁니다.”

○안향미 감독은…

△1981년 경남 합천 출생 △1996년 경원중학교 졸업 △1997년 덕수정보산업고 야구특기생 입학 △1999년 여자 야구선수로는 처음으로 공식경기(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4강) 출전 △2002∼2004년 2월 일본 여자야구팀 ‘드림윙스’ 투수 및 3루수 △2004년 3월∼현재 국내 최초 여자야구팀 ‘비밀리에’ 감독 △부모님과 3남 1녀 중 둘째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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