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사람들]대우차 진압 현장  촬영한 이춘상씨

  • 입력 2001년 4월 16일 09시 50분


지난 10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앞에서 벌어진 경찰의 대우자동차 노조원 폭행사건은 자칫 묻혀 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단하나의 비디오 테이프 덕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 까지 큰 파문을 던졌던 이 비디오를 촬영한 사람은 기자가 아니라 대우자동차 해고 노동자였다.

[동영상]부평사태
[화보]부평사태
[동영상]부상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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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사이버시위
- 부상자 인터뷰
- 네 티즌 분노
- 갑자기 거칠어진 경찰
- 대우車 폭력진압 파문

폭행당한 동료의 피가 이춘상씨의 카메라에 튀고 있다

각 인터넷 사이트와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 부평사태 관련 장면은 모두 그가 찍은 비디오를 복사하고 동영상 파일과 정사진으로 처리해 제공한 것이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영상패 이춘상(40)씨.

14일 인천 부평역 광장에서 열린 경찰의 대우차 조합원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만난 이씨는 이날도 연단 앞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흰모자를 쓰고 있습니다"라며 자신을 찾기 쉽게 안내해준 덕에 그를 포착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잠시 지켜보고 만나기로 했다.

행사장 왼쪽에 설치된 대형 멀티큐브에서는 100여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씨가 촬영한 지난 10일의 '참혹한'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이씨는 주변에 서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도 자꾸 멀티큐브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촬영한 영상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에 보람을 느끼냐는 질문에 "보람보다는 이런 일이 있다는 현실에 치가 떨린다"면서 "이런 나라에서 산다는 것 자체에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했다는 이씨는 "지난 10일은 경찰이 총만 안들었지 광주 때와 똑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처참한 모습 속에서 '카메라로 계속 촬영을 해야하나, 카메라로 전경을 한 명이라도 내리쳐야하나'하는 갈등이 계속 됐습니다"

그는 주변에 기자 한명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이 모습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졌다고 한다.

14일 부평집회를 촬영하고 있는 이춘상씨

경찰에게 걷어 채여 여러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은 카메라에 마구 피가 튈 때였다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계속 촬영해야 하나 촬영을 포기하고 카메라로 경찰을 내려쳐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더라구요"

그는 "살려 달라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동료를 도와주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계속 촬영을 하고 있던 내 심정은 오죽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계속 촬영하지 않으면 이 사건은 어둠 속에 파묻혀 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눈물과 동료의 피로 범벅이된 얼굴을 닦을 새도 없이 카메라를 메고 뛰었다.

4년째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집회현장을 누비고 있는 이씨는 이번과 같은 경찰의 폭력진압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우차 노조원들이 계속 4·5백명씩 계속 모이니까 이번 기회에 혼내주자고 한 것이며, 대우차 뿐만아니라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일은 도처에 널려있습니다.그래서 한사코 찍었지요"

수 많은 시위현장을 촬영한 그는 "그날 경찰이 그처럼 무참하게 폭력을 휘둘렀던 것은 아마 사진기자가 보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경찰이 촬영기자를 폭행하고 필름이나 테이프를 손상시키는 모습을 자주 봤다는 그는 "경찰이 내가 촬영하는 것을 제지하지도,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하지도 않은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87년 4월 대우차에 입사해 지난 2월 16일 1750명의 해고자와 함께 직장을 잃은 이씨에게는 아내와 세 아들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하늘이, 5학년인 바다 그리고 6개월된 늦동이 한별이.

"아들 녀석들은 아빠가 해고된 것 다 알아요"

아침에 집회현장으로 나올때 마다 "아빠 다치지 말고 조심하세요"라고 당부하는 하늘이와 바다는 그렇게 자주가던 PC방에도 이젠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씨는 "한달에 1만원씩 주던 용돈도 제대로 못주고, 진짜 애 분유 값이 없다는 얘기가 현실로 다가오니까 막막하기도 합니다"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씨는 가끔 시간을 내서 회갑잔치나 돌잔치 비디오를 촬영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카메라도 개인 장비예요. 아르바이트 해서 테이프 값이라도 벌어야죠"

인터뷰를 마친 이씨는 "얼굴은 가급적 안나가게 해 주세요"라는 당부를 뒤로 한 채 서둘러 집회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최건일/동아닷컴 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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