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阿, 외면 받는 인류의 고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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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년전 떠나온 땅 마주보기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존 리더 지음·남경태 옮김/992쪽·5만3000원/휴머니스트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의 노을을 바라보는 마사이족 전사. 아프리카는 대륙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 있던 판게아 대륙의 중심부였으며 인류의 시원지임에도 우리 의식의 어두운 저편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이유는 뭘까. 휴머니스트 제공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의 노을을 바라보는 마사이족 전사. 아프리카는 대륙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 있던 판게아 대륙의 중심부였으며 인류의 시원지임에도 우리 의식의 어두운 저편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이유는 뭘까. 휴머니스트 제공
아프리카는 현생 인류의 고향이다. 고고학이나 유전학 연구 결과는 대략 1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빠져나온 50명가량의 사람이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과 섬의 조상이 됐음을 보여 준다. 그중에 우리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의 시조가 되는 여인은 딱 1명이다. 그녀를 ‘이브’라고 부르는 이유다.

따라서 아프리카야말로 모든 인류의 노스탤지어(향수)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대상이 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툭하면 향수병 타령을 하면서도 정작 인류의 시원지에 대한 향수만큼은 강고하게 의식의 괄호 속에 묶어 두려 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총체적 지식을 추구하는 이 방대한 책을 읽으며 정말 알고 싶었던 궁금증이었다.

영국 택시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난 저자(76)는 열여덟 살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한 뒤 사진기자로 아프리카 전역을 돌아다니며 역사적 현장을 지켜봤다. 또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 인류학과 명예연구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으로 부르는 이면을 이렇게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럴듯한 별명이지만 사실 그것은 아프리카와 그 주민들을 다른 세계의 인류와 떼어 놓으려는 끈질긴 성향의 잠재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 말에는 분명히 이중적 의미가 있다. … 이 대륙에 관한 지식의 총체적 부족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이 별명은 아프리카가 아주 특별한 형태의 어둠, 인간의 어둠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암묵적인 낙인을 찍는다.”

여기엔 분명 인류의 집단무의식에 각인된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서구인들이 그곳이 자신들의 본향인지를 모른 채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악행에 대한 죄의식의 산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비서구인에게도 아프리카가 여전히 ‘망각과 무지의 대륙’이란 점에서 이런 설명도 한계가 있다.

정신분석학에선 이런 트라우마로 인한 망각을 치유하기 위해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게 총체적 정보를 제공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륙이자 두 번째로 큰 대륙인 아프리카가 지질학적으로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6500만 년 동안 북쪽으로 14도가량 이동했는지, 또 이로 인한 기후 변화로 인류가 어떻게 출현하게 됐는지를 세밀히 설명해 준다.

아프리카는 중국과 인도는 물론 미국과 유럽, 아르헨티나, 뉴질랜드를 합친 것보다 넓지만 인구는 1996년 기준으로 인도(9억5000만 명)에도 못 미치는 7억4800만 명밖에 안 된다. 또 아프리카 대륙의 97%는 3억 년 동안 안정된 구조를 유지해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드물다. 그중 상당수는 강괴(craton)라 불리는 거대한 바윗덩어리 몇 개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에 36억 년이나 된 남쪽의 카프발 강괴에서 금이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 산출된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직립보행이 열대우림에서 살던 유인원이 기후 변화로 초원에서 살게 되면서 이뤄졌다는 통설과 달리 치열한 생존경쟁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500만 년 전 인류의 선조는 건기에 물을 찾아 이뤄지는 동물의 대이동을 따라가면서 대이동 과정에서 죽음을 맞는 짐승의 사체를 뜯어 먹는 ‘떠돌이’가 된 탓에 직립보행을 하게 됐다는 가설이다.

결국 한 곳에 정착해 살다가 육식동물의 먹잇감이 되는 정주생활을 버리고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다가 결국 ‘아웃 오브 아프리카’까지 택했다는 설명인 셈이다. 고향살이가 힘들어서 쫓기듯 타향살이에 나섰다는 것이니 아프리카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의 집단무의식이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라’는 명령을 내리게 하는 것 아닐까?

다른 이유가 더 있다면 세계 다른 곳에 사는 인류는 뿌리가 같은 탓에 유전자 변이의 차이가 크지 않은 반면 아프리카에 남은 인류는 그 변이의 진폭이 크다는 점이다. 평균 신장이 가장 큰 마사이족과 가장 작은 피그미족이 모두 아프리카에 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SF영화 ‘혹성탈출’의 주인공처럼 ‘오래된 미래’가 가져다줄 충격을 피하려고 자꾸 뒷걸음치는 것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인류 전체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검은 대륙’을 은폐하고 회피하려는 우리 내면의 집단무의식과 싸워야 한다. 그런 호기심과 용기가 1000쪽 가까운 이 책을 읽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검은 대륙#집단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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