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Travel]“그곳에 계피계곡은 없었다”… 용맹한 여전사만이 존재할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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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오해로 빚어진 이름 ‘아마존’

이키토스공항 이륙 직후 기내에서 촬영한 열대우림. 사행곡류하는 물길은 아마존의 지류다.
이키토스공항 이륙 직후 기내에서 촬영한 열대우림. 사행곡류하는 물길은 아마존의 지류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당도했을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는 남미의 잉카제국이었다. 그때 북·남미 아메리카대륙의 주민 수는 줄잡아 1억 명. 그중 잉카는 900만 명을 헤아렸다. 그 수는 당시 이반 대제의 러시아, 오스만터키, 중국 명(明·중국)과 유카탄반도(멕시코)의 아스테카 제국(500만 명)보다 컸다(찰스 만의 저서 ‘인디언’). 그 잉카가 지금의 페루다. 그런데 아뿔싸, 제국 인구는 100년 만에 60만 명으로 격감했다. 잉카를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1476∼1541) 등 유럽인이 가져온 천연두 때문이다.

그렇다. 세계 최대 잉카제국 정복의 필살기는 ‘총·균·쇠’ 중에 ‘균(菌)’이었다. 아직도 이렇게 알고 있는 이가 많다. 당시 아메리카엔 없던 말(馬)과 철제무기로 무장한 기병, 대포와 총에 잉카가 굴복했다고. 아니다. 1532년 피사로가 타완틴수유(‘잉카’라 부르는 제국의 정식 명칭)제국의 수도 쿠스코(1438∼1533)에서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을 당시 제국은 이미 11년 전 아스테카 제국을 몰락시킨 또 다른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와 수하들에 묻어온 천연두의 창궐로 비실대고 있었다.

잉카의 공식 멸망은 1533년. 하지만 제국의 마지막 반격까지 포함하면 엘도라도(황금의 땅)를 찾아 안데스 고원을 헤집던 피사로의 쿠스코 무혈입성 6년 만인 1539년이다. 1532년 잉카황제를 사로잡을 때 피사로의 병력은 단 168명. 반면 제국의 군대는 수만 명을 헤아렸다. 이 후 반격은 단 세 번뿐. 그나마 모두 무위에 그쳤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유는 하나, 제국의 분열이다. 붙들린 황제는 금은보화를 내주며 목숨을 구걸하다 참수됐다. 이 와중에 남은 황족은 스페인에 충성을 맹세하고 꼭두각시 황제 노릇을 하며 몰락을 앞당겼다. 휘하의 부족도 정복자와 제국 양편으로 갈려 이전투구를 벌였다. 그런 7년간의 수탈과 분열. 그로 인해 제국은 거덜이 났고 피사로는 손쉽게 정복자가 됐다. 이후 피사로는 리마에서 식민지 건설에 매진하다 1541년 죽었다.

아마존 강이 세상에 드러난 건 피사로가 죽던 바로 그해. 주역은 형 대신 쿠스코를 통치하던 피사로의 막냇동생 곤살로 피사로(1510∼1548)다. 또 다른 엘도라도 ‘계피계곡’을 찾아 떠난 그는 수로탐험 도중 우연찮게 아마존 강에 들어섰다. 키토(에콰도르 수도)에서 시작된 탐험은 나포 강을 따라 아마존 강과 합류하는 이키토스(Iquitos)로 이어졌다. 그 즈음 식량이 바닥났고 부사령관 오르레야는 먹을 것을 찾아 정글을 헤매다 한 원시부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런데 그들은 놀랍게도 모두 여자였고 강력하게 활을 쏴댔다.

이게 이 물길을 ‘아마존(Amazon)’이라고 부르게 된 계기다. 아마존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용맹한 여인부족으로 활을 잘 쐈다. 하지만 그건 오르레야의 ‘위대한 오해’. 이들은 아마존 유역 68개 부족중 하나인 야구아 족의 남자전사였다. 오해는 이들이 맨몸에 걸친 옷에서 왔다. 잘 말려 잘게 쪼갠 야자수 이파리를 치마처럼 걸치고 얼굴에 빨간 칠을 한 게 영락없이 여전사로 비쳤던 모양이다. 야구아 족은 지금도 아마존분지의 강변 정글에 20∼30가구 단위로 살고 있다. 그 수는 6만 명. 지금도 긴 대롱에 넣은 독화살을 불어 사냥하는가 하면 채취와 농경을 한다.

곤살로 피사로의 탐험대는 계피를 찾아 아마존 강을 따랐고 이듬해엔 대서양에 흘러드는 강 하구에 도달했다. 아마존 강은 이렇게 최초 탐험에서 완벽하게 탐사됐다. 그러나 소득은 별무. 소문난 계피계곡은 없었고 잔뜩 기대했던 스페인 왕의 실망도 컸다. 탐험대의 보고는 이랬다. 찾긴 찾았는데 계피 맛의 다른 열매라고. 계피는 애초부터 없었다. 계피는 인도가 원산지다.

한편 곤살로 피사로는 아마존 탐사의 주역임에도 역사에선 ‘잉카몰락의 원흉’으로 지목된다. 왜냐면 쿠스코를 곤살로에게 맡기고 리마건설에 매진하던 피사로에게 ‘제국붕괴’는 계획한 목표가 아니어서다. 제국의 몰락은 곤살로의 망나니짓으로 앞당겨졌다. 꼭두각시 황제 망코 잉카에게 오줌을 뿌리고 왕비를 겁간하자 민중봉기가 일었다. 그 틈을 타 망코 잉카가 탈출했고 그는 군대를 수습해 쿠스코에 이어 리마까지 진격해 피사로를 위협했다. 그리고 결과는 잉카제국의 몰락(1539년). 그리고 그 2년과 4년 후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망코 잉카도 각각 부하에게 암살된다. 반면 곤살로는 형을 대신해 페루 최고 권력자가 되는데 아마존탐험은 그해(1541년) 시작됐다. 내친김에 좀더 밝히면 잉카를 몰락시킨 피사로 형제는 아스테카 제국을 멸망시킨 코르테스와 7촌 형제-코르테스의 외할아버지가 피사로의 증조할아버지-간. 결국 잉카 아스테카 두 남미제국은 가난한 시골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황금에 눈이 멀어 날뛰던 7촌 형제에 의해 세상에서 사라졌다.

페루=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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