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햇볕… 과일들 단맛잔치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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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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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맑은 날 5일이상 연속… 당도 상승 효과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주십시오(후략).’/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중에서》

따가운 햇볕은 과일을 달콤하게 만든다. 과일나무는 빛으로 광합성을 해 ‘당’을 만들어 과일로 보낸다. 수확 직전에 맑은 날이 지속되면 과일은 수분이 줄고 ‘당’이 늘어나 단맛이 강해지는데 이를 ‘회복기’라 부른다. 올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려 과일이 당을 축적할 기회가 적었지만 9월부터 하루 6∼12시간 햇볕을 쬐며 단맛(당도)을 높였다. 9월의 평균 일조량은 8월의 세 배에 달했다. 동아일보DB
올여름은 배나 사과 같은 과일엔 혹독한 시기였다. 한창 햇볕을 받아 맛있게 살찌워야 할 시기에 ‘주야장천’ 내린 비로 물만 잔뜩 먹었다. 7, 8월 두 달 동안 6시간 이상 햇볕을 쬔 날은 보름이 채 안됐다. 이런 날씨라면 과일 특유의 단맛이나 신맛을 내기 어렵다.

그런데 9월 들어 일주일 연속 맑은 날이 지속되며 과일은 최선을 다해 맛을 끌어올리고 있다. 먹혀야만 자손(씨앗)을 퍼뜨릴 수 있는 과일엔 ‘역전의 기회’, 이를 ‘과일 맛의 회복기’라고 부른다.

○ 햇볕이 쨍쨍하면 단맛 높아져

과일의 맛은 단맛(당도), 신맛(산도), 과즙(수분)이 어우러져 결정된다. 이 요소들은 또 일조량, 온도, 강우량 등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는다. 일조량이 많으면 단맛이 강해지지만 기온이 높으면 신맛을 내는 성분인 ‘산’이 분해되지 않아 신맛도 세진다. 비가 많이 오면 과일이 물을 많이 머금어 단맛과 신맛이 모두 약해진다. 올해 8월 말 국내 과일은 물을 많이 머금어 맛이 모두 약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9월부터 맑은 날이 5일 이상 지속되며 단맛과 신맛이 본격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기상청의 관측 자료에 따르면 국내 과일의 주요 산지인 전남 나주와 충남 천안 등은 9월 1일부터 6일까지 맑은 날이 지속됐다. 일조량이 10시간에 가까운 날이 이어졌다. 이 기간에 과일은 필요 이상 머금었던 수분을 내보냈고 나무는 강한 햇빛으로 열심히 광합성을 해 ‘당’을 만들어 과일로 보냈다. 가을 특유의 일교차 큰 날씨는 신맛이 과도해지는 것을 막아 줬다.

수분이 줄고 당이 늘자 과육 100g에 함유된 당의 양을 뜻하는 ‘당도’도 높아졌다. 당도는 과일의 상품성을 따지는 기준이다. 품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배는 대개 당도가 11도(11%)가 넘으면 상품성이 있다고 본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11도에서는 ‘아주 맛있지는 않아도 과일 특유의 맛을 충분히 낸다’고 느끼고 11.5도에서는 ‘달달함’을 맛본다. 12도부터는 ‘아주 달고 맛있는 과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5일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전남 나주의 한 과수 농원에서 측정한 배의 당도는 12도를 기록했다. 최장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는 “9월 들어 맑은 날이 5일 이상 지속돼 배의 맛이 회복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실제로 높은 당도가 나왔다”며 “과일들이 5∼7일에 불과한 ‘회복기’에 맛을 갑자기 끌어올리는 것을 보면 매번 신기하다”고 말했다.

○ 비 많이 올땐 회복기가 과일 맛 좌우

올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자 회복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기존에는 과실이 맺힌 뒤 자라는 ‘성숙기’의 날씨에 과일 맛이 좌우된다는 연구가 많았지만 앞으로도 올해처럼 여름에 비가 많이 온다면 회복기가 성공적인 수확을 가름할 가능성이 높다. 과일마다 회복기가 며칠인지, 일조량이 몇 시간 이상이어야 하는지 등을 알면 향후 날씨에 따라 출하 시기를 앞당기거나 늦춰 최대한 맛있는 과일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농가에서는 과일에 인위적으로 회복기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물을 많이 머금은 과일을 건조한 곳에 보관해 수분을 적당히 빼내 당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자연이 조성한 회복기에 비하면 효과가 미미하다. 과일은 80% 이상이 물로 이뤄져 수분만 빼내 당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 연구사는 “과일의 단맛을 이끌어내는 데 햇볕만큼 좋은 요소는 없다”며 “원산지나 재배 농가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이번 주 출시된 과일들은 맛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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