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 나노소자 나노반도체…선생님, 근데 나노가 뭐예요

  • 입력 2007년 10월 1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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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기술은 로봇이 몸속에 들어가 암 같은 질병 부위를 직접 치료하는 시대를 열 것이다. 그러나 국내 중고등학교에선 아직도 나노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교육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사진 제공 GAMMA
나노기술은 로봇이 몸속에 들어가 암 같은 질병 부위를 직접 치료하는 시대를 열 것이다. 그러나 국내 중고등학교에선 아직도 나노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교육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사진 제공 GAMMA
고교 과학교과서 40종중 나노 언급 6종뿐 ‘교실은 나노 사각지대’

“선생님, 나노가 뭐예요?”

경기도에 사는 고교 3학년 이정화(가명) 양은 학교에서 ‘나노’(nano·10억분의 1)라는 말을 배운 적이 없다. 이 양이 배운 어느 과학 교과서에도 ‘나노’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이 양은 “나노기술이란 말을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자주 봤지만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며 “다른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9일 독일과 프랑스 과학자들이 나노기술을 활용해 하드디스크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으면서 한국의 나노기술 교육이 도마에 올랐다. 마침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나노기술에 대한 지원이 지나치게 연구에만 쏠려 있다”며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나노 교육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성명을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 과학고에서도 특별활동 통해서나 배워

심각한 건 중고등학교 교육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노’라는 개념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학계에선 이대로 가다간 미래 성장산업의 주도권을 자칫 미국과 일본 등 경쟁국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나노기술은 10억분의 1m 단위로 가공한 재료를 전자, 에너지, 우주, 의료 등에 응용하는 첨단 공학이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슈퍼컴퓨터, 몸속에서 혈당을 측정하는 바이오칩, 뇌와 소통하는 컴퓨터 등이 앞으로 기대되는 나노기술의 결과물이다. 100만분의 1m, 즉 마이크로 단위인 현대 과학기술에선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문제는 나노기술이 사실상 중등 과학교육에서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일반계 고교는 물론 이공계 최고 두뇌집단으로 꼽히는 과학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홍경희 한성과학고 물리 담당 교사는 “정규 교과서에는 나노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며 “특별활동으로 하는 연구 과제로 나노기술을 선택해야 그 내용을 알기 시작하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현재 40종이 넘는 고교 과학 교과서 중 나노기술에 대해 언급하는 교과서는 6종에 불과하다. 그나마 모두 한 쪽짜리 부록 형태이거나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는 정도다. 나노기술을 체계적으로 이해시키기에는 처음부터 역부족이다.

○ 美-대만선 나노교재까지 만들어 집중 교육

미국은 2000년 발표한 국가나노주도계획(NNI)에서 나노기술의 저변 확대를 5대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실제로 미국과학재단(NSF)은 2005년 애리조나주립대에 620만 달러를 지원해 나노기술에 대한 이해 확대 방안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대학에서는 방학 때마다 이공계 대학원생과 고등학생이 짝을 이뤄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교육프로그램이 열린다.

미국과학교사협의회는 나노기술 교재까지 만들어 배포한다. 200쪽이 넘는 이 교재는 나노기술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직접 풀어 보는 연습 문제를 수록하고 있다.

대만도 나노생물, 나노화학, 나노물리를 독립 교과로 운영한다. 대만은 특히 나노기술에 관한 상식을 담은 놀이도구도 보급하고 있다. 나노기술에 관한 상식이 적힌 놀이용 ‘딱지’를 가지고 놀면서 학생들은 나노와 가까워진다.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정심의위원회의 과학분과위원인 고원배(삼육대) 교수는 “대만은 학업성취도와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나노기술을 가르칠 정도로 나노 교육에 열성”이라고 말했다.

○ 한국선 나노기술예산, 청소년교육에 배정 안 돼

나노 교육을 꿈도 꾸지 못하는 한국의 실상은 교육부의 예산을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2007년도 나노기술발전시행계획’에 따르면 관련 예산 179억 원 중 2단계 두뇌한국21(BK21) 사업에 가장 많은 118억 원이 지원된다. 그 뒤를 기초연구과제지원사업(33억 원), 신진교수연구지원사업(17억 원), 학문후속세대 양성사업(11억 원)이 따른다. 모두 기관의 연구 능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예산이다. 청소년에게 나노기술을 가르치는 데엔 한 푼도 지원되지 않는다.

이현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교사들의 자질 향상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나노기술 같은 첨단 영역에 대한 교사 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며 “고급 지식을 갖춘 이공계 석박사 인력을 교사로 임용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나노에 대한 한국과 미국 교재의 설명 비교
국내 K출판사 화학Ⅱ미국과학교사협회 부교재
“나노 물질은 크기가 작으면서도 표면적이 매우 커서…”“가로와 세로가 10m, 높이가 3m에 이르는 교실 400개를 합쳐 놓은 공간에 골프공 하나를 던져 놓은 크기” (한국 교재보다 크기에 대한 설명이 더 구체적)
“나노기술은 원자 또는 분자 단위로 조작하는 만큼…”“나노는 10억분의 1을 가리킨다. 2006년 10월 현재 미국 인구는 3억 명 정도이다. 적혈구는 헤모글로빈 분자 2억5000만 개로 이뤄져 있다” (한국 교재보다 나노의 정의를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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