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생물학]사레, 맹점 진화의 ‘사고’

  • 입력 2007년 9월 14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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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은 약 180만 종이나 된다.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것들을 합하면 1000만 종이 넘을 것이라 한다.

성경에는 하느님이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다. 18세기 생물학자 칼 폰 린네는 “신은 창조하고 나는 분류한다”며 1만2000종이 넘는 생물에 라틴어 이름을 붙이고 위계상의 지위를 정했다.

반면 19세기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저서 ‘종의 기원’에서 생물은 자연 선택으로 천천히 진화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이 학계에서 꾸준히 입증 보완되면서 오늘날 진화생물학이 확립됐다.

사람 몸에도 놀라우리만치 자연에 잘 적응한 장치가 많다. 어두워지면 더 잘 볼 수 있도록 동공이 커지고, 더우면 땀구멍을 많이 열어 열을 내보내 체온을 유지한다. 그런데 완벽해 보이는 진화과정에도 ‘실수’가 있다.

사람 허파의 기원은 어류의 부레다. 부레가 허파로 바뀌어 포유류의 식도 아래에 들어왔는데, 허파가 코와 연결되면서 생긴 기도가 어쩔 수 없이 목 부분에서 식도와 교차하게 됐다. 서둘러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면 사레가 들리는 현상은 바로 이런 어긋한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다.

사람의 망막에는 시세포가 없는 맹점이 있다. 한쪽 눈을 감고 손가락을 좌우로 서서히 움직이면 잠시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 맹점을 지날 때 빛이나 색을 감지하지 못해 망막에 물체의 상이 맺히지 않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낙지나 문어의 눈에는 맹점이 없다.

결국 사레나 맹점은 진화과정의 ‘실수’다. 신의 창조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진화는 특별한 방향이 없이 그때그때 적응하며 일어나기 때문에 이 같은 실수가 생겨난 것이다.

복근이나 귀를 움직이는 근육, 충양돌기(맹장), 꼬리뼈처럼 쓸모가 없지만 아직 남아 있는 퇴화기관도 진화를 통해 사람이 생겼다는 증거다.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이 같은 비효율적인 구조를 만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올해는 린네 탄생 300주년이다. 2009년은 생물이 변한다고 처음 말한 생물학자 라마르크의 저서 ‘동물철학’이 나온 지 200주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지 150주년, 다윈이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과학적 진실도 새로운 발견에 따라 변해 왔으니 과학이라면 무조건 믿는 과학지상주의도 문제가 있다. 반면 신을 그대로 믿기에도 의문이 너무 많이 생긴다. 양쪽을 모두 고민해 온 위대한 인물들의 기념일을 맞아 인간의 기원과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이병훈 전북대 생물과학부 명예교수 ybhoon@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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