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톡스, 알고보면 ‘기특한 명약’

  • 입력 2004년 6월 20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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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톡스는 최근 각종 질병 치료에 널리 쓰이고 있다
보톡스는 최근 각종 질병 치료에 널리 쓰이고 있다
《주사 한 방으로 감쪽같이 주름살을 감춘다. 한번 주사 맞는 데 수십만 원이나 하지만 국내에서만 매달 1만명 이상이 이용한다. 시장 규모만 연간 200억원대. 매년 50∼100%씩 시장은 커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 10년 전 출시됐을 때와 비교하면 판매량이 50배나 늘었다. 보톡스 얘기다. 국내에서는 주로 미용성형에 쓰이지만 세계적으로 보톡스는 60% 이상 질병 치료에 활용된다. 우리나라만 기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보톡스가 질병 치료라는 본래의 영역을 찾아가고 있다. 눈 주변 근육이 떨리는 안검경련이나 사시, 뇌성마비, 뇌중풍(뇌졸중)후의 근육강직증, 편두통, 요실금, 치열, 근막동통증후군, 턱 교정, 다한증 등으로 치료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다한증과 근육강직 치료=2002년 2월 세계 최고의 의학저널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보톡스의 다한증 치료 효과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연구팀은 8시간 동안 4컵 분량의 땀을 흘리는 중증 다한증 환자 145명에게 보톡스 주사를 놓았다. 그 결과 땀 분비량은 85%나 줄었다.

같은 해 8월 NEJM에는 보톡스가 뇌중풍 후 굳어버린 손목과 손가락의 근육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실렸다. 연구팀은 환자 126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에는 보톡스를, B그룹에는 가짜 약을 주사했다. 그 결과 A그룹의 63%가 통증이 줄어들고 근육이 부드러워졌다. B그룹에서 증세가 좋아진 비율은 27%에 불과했다.

▽통증 치료 효과 높다=보톡스는 수축된 근육을 이완시켜 주고 중추신경계로 전달되는 통증 신호를 둔화시킨다.

몇 년 전 미국통증관리학회지에도 이를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3개월 이상 통증이 지속된 25명의 환자에게 보톡스 주사를 놓은 결과 4주부터 통증이 줄었고 8주째에는 평균 40%에서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

보톡스 주사를 맞은 뒤 근막동통증후군 환자의 55.6%가 통증이 줄었다는 미국신경과학회의 연구 결과도 있다.

▽연구 결과 쏟아진다=2003년 1월 서울에서 열린 보톡스 포럼에서는 편두통 치료 효과가 발표됐다. 편두통 환자 271명을 대상으로 보톡스를 주사한 결과 85.6%에서 증세가 완화됐다.

2001년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피드콕 교수는 300명의 뇌성마비 환자들에게 보톡스 주사를 놓은 결과 90% 이상의 환자가 상태가 좋아졌다고 발표했다.

올해 5월 미국비뇨기학회에서는 6년간 방광기능장애를 가진 110명을 상대로 보톡스 주사를 놓은 결과 67%가 요실금 증상이 사라졌다는 발표가 있었다. 독일에서는 치질의 일종인 치열 환자의 80%가 증세가 호전됐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부작용은 없나=의사들은 대체로 보톡스가 부작용이 적고 안전하다고 평한다.

그러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보톡스 전문가 에이미 랭 박사는 먼저 운동과 진통제, 마사지요법 등 전통적 치료법을 시도하고 보톡스는 최후의 방법으로 쓸 것을 권했다.

또 아직 장기적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적다는 한계도 있다. 영국의 과학자 니컬러스 애브리샤미안은 2002년 9월 의학저널 ‘랜싯’에 실린 논문에서 “보톡스가 천천히 신경계통을 파괴하고 있다 해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름살 제거시 나타나는 부작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100명 중 1명꼴로 눈꺼풀이 처진다. 눈꺼풀이 붓거나 멍이 생기기도 한다. 무표정한 얼굴이 되는 ‘마스크 페이스’가 될 수도 있다. 물체가 여러 개로 보이는 복시 현상과 두통도 나타날 수 있다.

(도움말=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종성 교수, 정형외과 박수성 교수,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 오갑성 교수, 치과진료부 구강악안면외과 홍종락 교수)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보톡스의 역사▼

보톡스는 엄밀하게 말하면 ‘보툴리눔 톡신’이라고 해야 한다. 보톡스는 미국 앨러간사에서 출시한 브랜드 이름. 워낙 유명해 관련 제품이 모두 보톡스라고 불리는 것이다.

보톡스는 통조림이 부패하거나 고기가 썩을 때 생기는 박테리아인 ‘글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에서 추출한 신경독이다.

19세기 초 독일에서 집단 식중독이 발생해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의사인 유스티누스 케르너는 부패한 소시지 통조림에서 나오는 보툴리눔 톡신이 원인이었음을 밝혀냈다. 1g으로 수백 명을 동시에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의학자들은 그 누구도 보툴리눔 톡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73년 미국 스미스-케틀웰 안과연구소에 근무하는 의사 앨런 스콧은 원숭이 실험 도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수축돼 있던 눈 주변 근육에 보툴리눔 톡신을 주입하자 근육이 이완된 것이다. 그는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의학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보톡스는 눈 주변의 근육경련(안검경련), 목이 돌아가는 증상, 소아마비의 치료제로 쓰이기 시작했다.

주름살 치료제로 이용된 것은 1987년부터. 캐나다 밴쿠버의 안과의사 진 캐루터스는 환자의 안검경련 치료 도중 눈가에 있던 주름살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보톡스는 1989년 사시 및 안검경련의 치료제로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게 된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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