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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대담]하버마스/"시민연대 키워야 정의실현"

입력 1999-12-31 19:05업데이트 2009-09-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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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틀은 어떤 것일까. 이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동아일보는 세계 철학계를 주도하는 위르겐 하버마스(독일),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미국), 그리고 행동하는 지식인 노엄 촘스키(미국) 등과 국내인사 간의 연속대담을 마련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입장과 지향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에 대해 일관되고도 강력한 신념을 내비쳤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새 시대를 읽고, 구상하고, 나아가 보다 조화로운 인간의 지평을 확보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상진〓새 천년의 출범과 함께 귀하의 주요저서 ‘사실성과 타당성’ 한국어판이 서울에서 곧 출판되는 것은 정말 의미있고 반가운 일입니다. 그 한국어판의 서문에서 귀하는 “사회적 불평등이 시민의 연대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대단히 흥미로운 주장을 했습니다. 이 멋진 생각을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공동체 인식 필요▼

▽하버마스〓같은 생각을 존 롤스도 정의(正義)의 기본원칙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가격이라는 언어만 이해할 뿐 외부 비용에 대해선 눈과 귀를 막고 있기 때문에 분배정의를 스스로 보증하진 못합니다. 이 견디기 힘든 사회적 불평등을 보완하는 것이 사회복지국가의 요체지요. 이 이념은 사회민주주의에 핵심을 두고 있지만 또한 민주적 입헌국가의 원칙 그 자체로부터 생겨납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시민들은 그저 평등한 권리를 가질 뿐만 아니라 실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정의를 촉진하려면 대체로 특권집단에 더 많은 부담을 지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곧 시민적 연대의 표현입니다. 한 시민이 다른 시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이유는 두 사람 모두 같은 정치공동체에 속하기 때문이지요. 개인의 지위상승이나 경제적 성공에는 자신의 성취나 우연뿐만 아니라 더 나은 출발조건과 같은 구조적 이점이 작용합니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할수록 시민적 연대의 책임도 쉽게 이해됩니다.

▽한상진〓새 천년이 시작했지만 갈수록 증대하는 구조적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하버마스〓무엇보다 ‘지구적 통치(Global Governance)’에 대한 새로운 정치학적 분석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세계화된 시장, 특히 금융시장을 어느 정도 다시 규제할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내치(內治·Weltinnenpolitik)가 없다면 사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어요. 내가 보기에 문제는 주도적 국가들에 정치적 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우산 아래에서 야생적인 ‘초고속 자본주의(Turbo―Kapitalismus)’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얻어내느라 온통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합니다. 하나는 유엔기구를 (칸트의 의미에서) 세계시민적 질서로 발전시키는 문제입니다. 물론 그 기능은 평화보장, 인권정책, 세계적 위험(생태적 위험, 전염병의 위험, 기술적 위험 등)의 방지 등에 제한돼야겠지요.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자국의 시민권과 함께 세계시민의 지위를 갖게 되고, 필요하다면 자국 정부에 대항하는 일정한 권리도 향유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른 한편 유엔과 국민국가 사이의 중간 수준에서 경제정책에 관해 세계적으로 구속력 있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조직과 절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세정책에서 국민국가들 사이에 일정한 공조가 없으면 궁극적으로 (불평등을 줄이려는) 사회정책의 목표는 어렵게 되지요.

▽한상진〓당신은 토니 블레어가 내건 ‘제3의 길’을 ‘수세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공세적’ 제3의 길을 제안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 존엄성 지켜야▼

▽하버마스〓내 친구 앤서니 기든스는 훌륭한 사회이론가지만 훌륭한 정책자문역까지 할지는 좀더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제3의 길’은 지금까지 윤곽이 상당히 불투명합니다. 제3의 길의 정책은 주로 ‘인적 자본’에 집중되어 있지요. 학교교육 직업교육 재교육 평생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물론 나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 노동자의 유연성도 촉진할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힘들게 성취한 법적 권리가 폐기되어선 안되기 때문에 이 양자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아무런 조치가 없다면 사람들은 시장의 우연성에 무기력하게 노출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할 것입니다. 고전적인 노동자의 권리는 이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이 권리들을 경솔하게 다뤄선 안됩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상품이 아니라는 마르크스의 기본통찰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금까지 ‘제3의 길’로 제시된 정책들은 인간존엄성의 기준에 따라 ‘초고속 자본주의’를 제어하기보다 오히려 노동자들을 세계시장의 기능적 명령에 적응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수세적’입니다. 이에 반해 ‘공세적’ 전략은 20세기 3·4분기에 관철됐던 서구 국민국가의 전통, 즉 정치와 시장의 균형을 초국가적 차원에서 재건하는 것이지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정치의 손을 떠난 시장을 정치가 되찾아야 한다는 요청이 분출하고 있어요. 국가의 경제개입이 상대적으로 강했을 때 사회적 보호를 확장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민주적 입헌국가는 모든 시민들이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역사상 처음으로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각에 따라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동등하게 효과적인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자유주의의 기본이념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한상진〓한반도의 미래는 어떻게 보는지요. 96년 당신의 서울대 강의가 인상적이었습니다만 남북관계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화가 유일한 방법▼

▽하버마스〓나의 담론이론은 어떻게 규범적 합의가 가능한가, 즉 합의에 의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도덕적 법적 정치적 문제에 관해 어떻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전략적 상황에서는 이런 합의를 기대하기 힘들지요. 그러나 전략적 대립의 상황에서도 상호이해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현명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북한과의 대화도 그런 경우라고 봅니다. 고도의 군사력을 갖고 있고 특히 반응을 예측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해서는 이런 대화정책 이외에 다른 여지가 없어요.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에게는 모든 정치적 통일이 궁극적으로는 자기포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에서 우리는 평화적인 자기 청산과정이 오직 안으로부터만 이뤄질 수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상황에 전망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지식인층이 주도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위해 나는 서울대 서남강좌에서 넘치는 민족감정으로 일을 서두르기보다 좀더 긴 과도기를 상정하는 게 남북한 주민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의견을 피력했을 뿐입니다.

▽한상진〓돌진적 근대화와 IMF 구조조정의 부작용에 관해서는 어떤 처방을 내리겠습니까.

▼소외계층에 희망줘야▼

▽하버마스〓모든 시민들이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시민 사이의 연대가 손상되지 않습니다. 소외된 계층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보장치가 울리지 않는 정치공동체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사회적 분절이 지속될 뿐 배제된 집단들에 어떤 채널도 열어주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에 불과한 거지요.

▽한상진〓‘시민이 세상을 바꾼다’는 캠페인이 이곳에 요란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자기제한적’ 사회운동 모델을 주창하지 않았습니까.

▽하버마스〓민주주의가 확립된 곳에서는 국가권력을 정복하려는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민주주의 틀 안에서 민주화 과정을 한걸음 더 진척시켜야 할 뿐입니다. 또 시민사회의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언로를 열고 공론을 동원하며, 의회와 정부의 어젠더에 적합한 쟁점들을 투입시켜야지요.

▽한상진〓그런데 급속한 산업화를 경험한 한국에선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함께 복잡한 체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의 문제도 심각한 것 같습니다. 현대성의 위기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위기의 결과가 진정한 민주화라기보다 법치를 우선하는 기술관료의 승리로 낙착되지는 않을까요.

▽하버마스〓독일에서도 100여년 동안 민주주의 없는 법치국가가 있었습니다. 바이마르 민주주의가 몰락한 것도 이와 관련됩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안에서만 시민들이 인권침해에 민감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3년 이후 독일에서 파시즘이 테러만으로 관철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파시즘이 먹혀들었던 것은 서구의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인권의 전통이 시민의 가슴과 신념 속에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대통령 시대의 한국도 좋은 보기입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시민들간의 사적 시장거래는 점차 보장되었지만 민주주의를 필수적으로 촉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도 눈에 띕니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자유로운 시민들의 자기결정권이 확보되어야만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진다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넓게 확산되었으니까요.

요컨대 성숙한 후기산업사회의 문제들은 결국 민주주의 없이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지성을 갖춘 시민들이 무엇인가를 자율적으로 이루는 과정을 따라 지식사회도 유지되지요.

▽한상진〓다시 질문을 보편적인 문제로 옮겨보겠습니다. 21세기에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문화가 왜 그리도 중요한지요.

▽하버마스〓현대사회에서 종교의 가르침은 다른 신앙이나 주장과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종교는 이를테면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된 자신만의 진리에 의해 통치되는 하나의 폐쇄된 우주 속에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종교는 신앙의 다원주의와 만나는 동시에 과학적 세속지식과도 만나게 됩니다. 서구의 개념에 따르면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독단적이지 않습니다. 세계관의 다원주의를 서구처럼 목구멍의 가시로 느끼지 않으니까요. 종교적 관용이 무리한 기대가 아니라 오히려 익숙한 습관과 같습니다. 때문에 서구에서처럼 신앙을 반성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강도 높은 정서적 압력은 아마도 적을 것 같습니다.

이제 종교인들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런 반성적 의식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상진〓유엔은 2002년을 문명간 대화의 해로 정했습니다. 이 대화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갖고 있습니까.

▽하버마스〓나는 그 점에서 상당히 낙관적입니다. 그 이유는 서로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라도 같은 ‘도덕적 관점’을 공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도덕적 견해는 매우 다릅니다. 그러나 논란거리가 된 규범적 문제에 관해 공동의 해결책을 찾기 시작하면 처음부터 어떤 공통의 시각을 갖게 되지요. 우리는 대화를 통해 우선 상대방이 어떻게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가를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아야만 비로소 그들의 관심을 올바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갈등에 관해서도 이성적 해결이란 이에 근거한 실천이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똑같이 좋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도 알고 있지요.

▽한상진〓그러나 문명간의 충돌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문명충돌 가능성 희박▼

▽하버마스〓세계시장을 둘러싼 경쟁과 금융체계의 취약성 때문에 경제적 라이벌을 이루는 거대지역간의 갈등이 더 첨예해지지 않는 한 나로서는 ‘문명충돌’의 동기는 없다고 봅니다. 만약 세계적 수준에서 생활조건의 현저한 격차를 줄이고 세계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오히려 문화간의 의사소통이 더 강화되고 각 문화의 고유한 지평이 확장될 것을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화의 보장, 유엔 제도 안의 상호협력, 인권에 관한 문화간 토론 등이 필수적이지요.

▽한상진〓감사합니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하버마스는 누구?◇

젊은 시절 하버마스는 해방적 비판이론을 옹호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의 담론은 우아하고 세련되게 들린다. 비판의 칼날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면 성숙의 값이라고 할까. 그는 오늘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꼽힌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제2세대 학자로 분류되는 그의 강점은 논쟁을 통해 성장한 것. 그만큼 논쟁을 좋아하고 논쟁을 통해 수많은 사조와 이론을 섭렵한 인물도 찾기 어렵다. 60년대 실증주의, 마르크스주의 논쟁, 70년대 기능주의, 해석학, 후기자본주의 논쟁, 80년대 탈현대 논쟁, 그리고 90년대 독일통일, 세계화, 공동체주의 논쟁 등 전방위의 논쟁에서 그는 항상 한복판에 서 있었다.

경이로운 것은 일관성이다. 오늘의 특징이기도 한 온갖 상대주의의 유혹과 도피, 과학 기술 계몽에 대한 불신, 포스트모던 데카당스, 그리고 세계화와 더불어 고조되는 불확실성과 위험, 이런 복합적인 추세들에 직면해 하버마스는 누구보다 일관되게, 또 설득력 있게 인간 삶의 합리적 기초와 이성을 옹호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런 점에서 그의 학문활동은 오직 하나의 목적, 비판적 분석과 토론을 통해 어떻게 합리적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그의 학문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었던 학생운동이 60년대말부터 급진화됨에 따라 하버마스는 이를 비판했고, 이로 인한 갈등 속에 그는 스스로 프랑크푸르트대를 떠나 70년대 내내 스타른베르크에 칩거했다. 80년대초에 복직해 94년 정년 퇴임했고 현재 이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이번 대담은 지난 세밑에 몇차례 서면 질의 답변이 오가며 방대한 양으로 정리됐으나 그중 핵심적인 부분만 소개한다.

◇위르겐 하버마스 약력◇

△1929년 독일 뒤셀도르프 출생

△프랑크푸르트대 철학과 명예교수

△저서〓‘이론과 실천’ ‘의사소통행위이론’ ‘사실성과 타당성’ 등

◇한상진 원장◇

△1945년 전북 임실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중민이론의 탐색’ ‘변혁의 주체는 누구인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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