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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가을 울산 남구 달동의 한 골목길. 스물여덟 살 주부 이미란은 자전거 핸들을 꽉 쥐었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을 3바퀴 돈 후 나선 ‘도로 주행’ 실습. 초등학교 이후 처음 타 본 자전거였지만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 2차선 도로는 다행히 한적했다. 한 발 두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과 월드컵 축구 최종 예선은 비슷한 시간대에 열렸다. 다른 방송사들 배 아프게 두 경기 모두 SBS가 중계했다. 야구는 지역 팀 간 경기다. 반면 축구는 월드컵 본선 티켓이 걸린 국가 대항전. 그런데 시청률은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서촌(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컬음)에서 상량식(上樑式)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광화문이나 숭례문 같은 국가적인 건물의 상량식은 접해 본 적이 있지만, 여염집의 상량식은 처음이라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상량식이란 한옥의 마룻대(
프로야구 원년 팀 삼미 슈퍼스타즈 골수팬, 전홍재-김진옥 씨 혹자는 프로야구 원년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패배에 지쳐 있던 타 구단의 ‘영양간식’, ‘자양강장제’라고 했다. 심지어 제 한 몸 헌신해 원년의 5개 구단을 더 월등하게 보이도록 해줬다며 ‘프로야구의 거
《 기차에서 내려 이리역(현 전북 익산역) 광장으로 나가자 부모님이 서 계셨다. 무작정 집을 나와 목포행 완행열차를 탄 지 4, 5일 됐을까. 유달산을 올랐다 내렸다 하며 빈둥대다 돌아온 참이었다. 연고 없는 목포에서 더이상 할 일도 없었다. 가출했던 중학교 3학년 셋째
“그런데 평지는 언제 나와요?” 20일 오전 11시 강원 홍천군과 양양군을 잇는 구룡령 옛길로 들어선 뒤 5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뜬금없는 질문이 나왔다. 오르막을 함께 오르던 40여 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맨 뒤에서 뒤따라오던 남성이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내
늦여름부터 저희 집에 있는 구아바 나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살펴보니 화분 속에 뿌리가 가득 들어차 양분을 흡수하지 못해서였습니다. 열매가 달려 있어 섣불리 분갈이를 하지 못하다 지난주에야 큰 화분에 옮겨주었습니다. 식물도 일정 크기까지는 성장을 계속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와 친구들을 사로잡은 게임이 둘 있었다. 하나는 ‘스타크래프트’, 다른 하나는 ‘포트리스2’였다. 스타크래프트의 아성은 너무도 굳건해서 그 어떤 게임도 이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자면서도 마우스를 움직이고 끊임없이 단축키를 눌
머리 위로 툭 불거진 눈은 양 옆이 아닌, 대가리 위쪽으로 몰려 붙었다. 가운데로 몰린 두 눈깔이 멀뚱하다. 바라보는 사람이 되레 부담스러울 정도. 마름모꼴의 길고 큰 얼굴에 입은 앞으로 비죽 튀어나왔다. 거대한 머리에 비해 보잘것없는 몸통 위로 지느러미가 대중없이
망둥이는 ‘바보도 낚을 수 있는 물고기’로 불린다. 흔한 데다 식탐이 많아 쉽게 잡을 수 있는 탓이다. 그래도 요령을 조금 알고 낚는 게 훨씬 더 낫다. 낚시도 ‘과학’이니 말이다. 망둥이는 릴을 쓰지 않는 민장대나 루어 낚싯대, 미끼를 멀리 던질 수 있는 원투 낚싯대
《 “대학생 시절 그의 책을 정말 열심히 봤습니다. 어딜 가나 그 책만큼은 꼭 갖고 다녔으니까요. 금방 너덜너덜해지더군요. 결국 같은 책을 세 번이나 샀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 상을 받게 되다니….” 그가 기억하는 수상소감은 대략 이랬다. 2006년 12월 ‘국제전
탐스러운 열매가 달린 과일나무와 알알이 익은 가을 들녘 곡식을 보면 문득 ‘올 한 해 동안 나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이루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의 풍성한 결실을 마주하면 인간이란 존재가 언제나 왜소하게만 느껴진다. 논의 벼
《 ‘철컥철컥’, ‘잘가당잘가당’. 엿장수 가위 소리가 신명나게 들린다. 그런데 소리의 근원지가 좀 이상하다. 엿장수가 막 도착한 동네 어귀일 것 같지만, 소리는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미용실에서 나고 있다. 이곳은 무려 43년이나 된 세나미용실. 그곳에서 70세
#사례1: 드라마 PD인 독신 여성의 집몇 년 전 사무실로 고객이 찾아왔다. 방송국 PD인 그는 혼자 사는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109m²(약 33평)형 아파트를 수리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집은 20여 년 전 당시 가장 보편적이었던 4인 가족 기준으로 설계된 공간이었다. 집 내부는
《 ‘오, 단순한 것… 넌 어디로 갔니?’-킨 ‘Somewhere Only We Know’(2004년) 》 그이는 한때 여기 있었다. 웃었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렸다. 내리쬐는 햇살에 그이는 눈을 찡그렸지만 도시는 거대하지 않았다. 상업이나 공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이를 위해 존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