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日지진현장 누빈 구조대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4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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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인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4월 4일 동아 뉴스스테이션입니다.
이번 일본 대지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외 구조대는 우리 119구조대원들이었습니다. 방사능공포에도 불구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생존자 수색을 했습니다. 119대원들이 기억하는

참사현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신광영 기잡니다.

***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달 12일, 119 구조대원들이 최대 피해지역인 센다이에 도착했습니다.

해외구조대 중 최대규모인 107명의 대원들이 전원 투입돼 수색작업을 했지만 생존자는 없었습니다.

(인터뷰) 정창영
"최악의 조건이에요. 지진 나서 엎어진데다 물 피해봤지 거기다 기온까지 급강하. 저녁에 영하 10도 이상 떨어지지."

바다에서 시속 700km로 달려오던 10미터 높이의 쓰나미는 일본 동쪽 해안선 480km의 지역을 가깝게는 10km에서 멀리는 40km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5층 아파트 높이의 파도가 서너 차례 휩쓸고 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용상
"운동장의 노란 잔디밭 있잖습니까. 200~300미터 상공에서 보면 운동장의 노란 잔디밭처럼 보입니다.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인터뷰) 정창영
"차 속에서 찌그러진 차 속에서 발견된 시신이 하나 있었는데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더라고요."

일본 자위대와 경찰이 1차 수색을 마쳤던 곳에서 우리 대원들은 시신 18구를 찾았습니다.

실종된 가족을 찾아 무너진 집 주위를 서성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최명오
"열 살 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자기 아버지 사진 한 장만 들고 나가더라고요. 아무것도 없이."

이번 구조작업의 가장 큰 장애물은 원전 파괴로 인한 방사능 공포였습니다.

취재진이 모두 철수하고 해외 구조대까지 일시에 빠져나가자 대원들도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황웅재
"독일구조대가 우리 캠프에 와가지고 굉장히 위험한 상황인데 왜 철수할 생각을 안 하냐 그런 얘기를 하고 갔어요. 직원들이 저를 찾아와서 농담이지만 계측기 좀 고장 내서 확 올려보라고

그런 직원도 있었고."

하지만 방사능 수치가 생활 방사능의 서너 배정도를 유지하고 있어 관련 규정에 따라 수색작업을 계속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킨 119대원들은 열흘간의 생존자 수색을 마치고 지난달 23일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인터뷰) 정창영
"제일 먼저 도착한 거 보니까 역시 제일 가까운 나라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좋은 이웃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아일보 신광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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