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민권운동가 김성호씨 "권희로사건은 동포 울분 촉발시켰다"

  • 입력 1999년 9월 5일 19시 42분


‘권희로(金嬉老)사건’ 9개월 만인 68년11월 권씨의 수기 ‘너는 너, 나는 나’가 한국에서 출간됐다. 이 책이 빛을 보기까지에는 한 재일동포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현재 ‘일본 사회경제시스템학회’ 회원으로 재일동포역사 등을 연구하는 김성호(金聲浩·63)씨.

김성호씨는 4일 야마나시(山梨)현 고부치자와(小淵澤)의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권희로사건은 살인과 인질극이라는 범죄의 형태를 띠었지만 일본사회의 구조적 편견과 차별 속에서 반항할 수밖에 없었던 상당수 재일동포의 굴절된 심리를 충격적인 형태로 폭발시킨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그의 서재에는 권희로씨의 빛바랜 육필 수기원고와 시, 공판에 대비해 작성한 모두(冒頭)진술문과 메모 등이 지금도 보관돼 있다.

권희로사건 당시 김성호씨는 시즈오카(靜岡) 한국교육문화센터에 일하고 있었다. 라디오를 통해 사건을 알게 된 그는 인질극의 현장으로 달려가 긴박했던 순간들을 지켜봤다. 권희로씨가 수감된 뒤에는 매주 그를 면회하고 변호인단 구성에 참여하며 지원했다. 부산 동래고를 졸업한 뒤 일본에 건너가 대학을 마친 김성호씨도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몸으로 느껴왔다.

원래 권희로씨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라 ‘조선’이었다. 김성호씨는 일본과 수교한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수감생활 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권희로씨를 끈질기게 설득, 사건 2개월후인 68년4월 한국국적으로 바꾸도록 했다.

김성호씨는 사건후 한국정부의 대응에 배신감을 느꼈다.

“박정희(朴正熙)정권은 권희로사건이 부각되면 한일 우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재일동포들이 민족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재일동포 상당수도 권희로사건에 관여하는 것을 꺼렸다.”

그런 배신감은 그가 70년대 일본에서 ‘김대중(金大中)구명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시인 김지하(金芝河)전집을 일본어로 번역출간하는 등 한국민주화운동에 뛰어들게 한 계기가 됐다.

“아직 재일동포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고령의 권희로씨가 석방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가 귀국후에도 재일동포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고부치자와(야마나시)〓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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