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지워진 버킷리스트…캐나다 ‘오로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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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5월 12일 10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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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남동부 뉴브런즈윅주 멍크턴/ⓒ 뉴스1
캐나다 남동부 뉴브런즈윅주 멍크턴/ⓒ 뉴스1
가끔은 아주 작은 우연의 시작이 엄청 큰일을 일으킬 때가 있다. 지난 10일 금요일이 그런 날이었다. 영어 귀를 뚫겠다고 매일 캐나다 라디오 뉴스를 흘려듣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태양 폭풍’이란 단어를 주워듣고는 그 뒤부터는 내용을 집중해서 듣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뭔가 심상치 않다며 뉴스를 찾아보는데 여러 뉴스 채널에서 막 속보로 ‘오로라’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계속 기사를 검색해 보던 남편이 왠지 우리도 오늘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흥분하며 들뜨기 시작한다.

캐나다하면 우리가 ‘오로라’를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사실 또 말처럼 쉽게 볼 수 없는 게 ‘오로라’이다. 캐나다의 동남쪽 평범한 시골 마을 몽튼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오로라는 그냥 버킷 리스트에나 존재하는 그런 꿈일 뿐이다. 캐나다의 고위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야 무지개를 보듯 가끔 ‘오로라’를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 그걸 봤다면 사막에서 신기루를 본 거나 같은 경우이다.

그런데 남편은 왜 이리 호들갑인지 저러다 실망이 크겠는데 싶다가도 나 역시 혹시나 하는 기대, 얼마 전 ‘개기일식’ 현상 때 캐나다 전체가 떠들썩했었다. 그때 나는 별거 아니겠지, 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측하기 좋은 지점을 찾아갈 때 그냥 집에 있었는데 세상에 집에서만 봐도 장관이었다. 그때 좋은 지점에 가지 않은 것을 얼마나 후회했던지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있으면 꼭 적극적으로 움직여 보겠다고 다짐했었다.

캐나다 멍크턴/ⓒ 뉴스1
캐나다 멍크턴/ⓒ 뉴스1

남편은 정말 보일지도 모른다고 자꾸 신문 기사를 읽어준다. 이번 오로라는 20년 만에 오는 강력한 태양 폭풍으로 인해 10일과 11일에 남쪽 멀리까지 북극광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태양 폭풍이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 북부와 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하룻밤 사이에 다채로운 오로라로 나타날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래 그건 과학자들 이야기고 설마 여기까지 보이겠어. 그리고 내 인생에 오로라를 볼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 나는 의심이 먼저 앞선다. 하지만 뭐 이번에는 그냥 밑져야 본전으로 ‘오로라’를 기대해 보기로 했다.

오후에 이 사실을 알았던지라 우리는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오늘따라 왜 이리 해가 안 지는지 밤 9시 30분이 되어도 밖이 환하다. 드디어 10시가 되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로라의 기척은 어디서도 느낄 수가 없다. 완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야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웬걸 오늘따라 다들 불금을 즐기는지 집마다 불들을 환히 켜놓고 가로등은 또 왜 이리 밝은 건지 이 인위적인 불빛을 오로라가 뚫기는 만무하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진짜 혹시나 하는 1%의 기대감 때문에. 담요를 차에 싣고 높고 어두운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마그넷 힐’이라는 그나마 높은 동네로 출발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대실망이다. 거기 또한 마을이라 가로등 불빛들이 훤하다. 그리고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자리들만 제자리를 찾아 놓여 있고 그냥 평온한 밤하늘이다.

이번 태양 폭풍은 너무 강력해서 전력망이나 위성 및 통신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하니, 핸드폰이나 내비게이션이 안 될까 봐 걱정이돼서 아무 곳이나 가보기에도 망설여진다.

캐나다 멍크턴/ⓒ 뉴스1
캐나다 멍크턴/ⓒ 뉴스1

시간이 지나도 하늘의 변화는 없고 도로에도 우리 차뿐이라 너무 순진하게 이 과학자들의 말만 믿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계속 집에 돌아갈지를 망설이는 내적 갈등을 느끼며 하늘에 이상한 게 보이기만 하면 아~ 저건가? 왠지 푸른색을 띠는 것 같은데? 아닌가? 너무 보고 싶어 내가 만든 허상인가? 계속 의심을 해본다.

그런데 우리의 바람 속에서 만든 허상이라고 하기엔 계속 눈에서 사라지지 않는 하얀 빛의 은하수 같은 긴 구름 띠가 희망 고문을 한다. 저게 왠지 오로라의 시작 같기도 하고 순간순간 녹색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30분 넘게 쳐다보고 있어도 우리에게 확신을 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 ‘오로라’는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오로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옐로나이프로 일주일 간 오로라 투어를 가도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쉽게 볼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그냥 해프닝으로 끝내도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다. 우리가 너무 허황한 꿈을 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발길을 집으로 돌리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참 패턴이 비슷하다. 뭔가 포기하려고 하면 그때야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내린다. 차에 막 타려 할 때 우리는 정말 오로라의 빛을 보았다. 아까 보았던 그 은하수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희미한 녹색이 난다. 맞는지 확신해 보려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니 정말 녹색으로 찍혀 나온다.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아직은 너무 아름답다는 환호성보다는 어쨌든 내가 지금 이 순간 오로라를 보고 있다는 상황이 감격스러워서 나오는 소리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환호성은 더 크게 터져 나온다.

갑자기 하늘이 자줏빛으로 물들어 오르더니 녹색이 온 하늘로 퍼져 나간다. 마치 화선지에 물감이 번져나가듯 하늘에 이 빛들이 그라데이션이 되어 퍼져 나가고 있다. 열심히 눈에 넣고 머리로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이 황홀함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요동치고 있는 가슴에도 계속 담아본다. 카메라로도 계속 찍고 있지만 역시 이 작은 기계 문명으로 이 장엄한 오로라의 빛을 담기는 역부족이다.

오로라는 5분 정도 하늘을 가로질러 다양한 색상의 광선들을 쏘며 마치 레이저 쇼를 하다가, 잔물결처럼 일렁이기도 하고 하늘 가운데서 지구를 향해 동그란 원형의 모양으로 커튼 모양의 빛을 쭉쭉 내리기도 한다. 그러다 또 몇 분 잠잠했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그러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주위를 둘러보니 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 캐나다 여기저기에서는 오로라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며 잠 못 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오늘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선물 같은 하루겠지. 캐나다인들도 일생에 몇 번이나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아마 오늘이 생애 처음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캐나다 멍크턴/ⓒ 뉴스1
캐나다 멍크턴/ⓒ 뉴스1

오늘 우리에게도 당연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하루이다. 사실 이민자들은 이런 것을 잘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지역 뉴스를 자주 접하지 않고, 캐나다인들과 잘 소통하지 않고 살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오늘 이런 사실을 아예 모른 채 그냥 평범한 저녁을 맞이하고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편이 우연히 들은 라디오의 두 단어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엄청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행히 언론에서 얘기했던 통신 장애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캐나다 특성상 집 밖을 나오면 인터넷 연결이 잘되지 않아 나는 한국 친구들에게 부랴부랴 연락하고 싶었지만 핸드폰이 먹통이 되어서 말해주지 못했다. 오로라는 내일 저녁까지 볼 수 있다 하니 집에 가서 빨리 소식을 전해 줘야겠다.

갑자기 버킷 리스트 중 하나 삭제되었다. 이루고 싶었지만 이룰 수나 있을까? 시간이 허락된다면 꼭 캐나다에 살 동안 오로라 투어는 하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오로라를 본다는 것은 시간, 돈, 그리고 하늘이 허락해 줘야만 하는 아주 강도 높은 소원이기에 절대 내 버킷 리스트에서 지울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라는 희망 없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뜻밖의 행운에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늘이 우리에게 허락해 준 것이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오늘 밤 우리 가족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눈에 담아왔던 그 모습을 계속 꺼내보고 다시 넣고 또 꺼내보며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진정시키며 그렇게 뜬눈으로 지새웠다.

(멍크턴=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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