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박정미] 한류 in China②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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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인어아가씨' 안티팬이 되었을까?

몇 년 전 취재를 통해 알게 된 한국 교민여성 A씨.

5년간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던 그녀는 지난해 가을 직장에서 알게 된 현지인과 결혼해 전업주부로 전향했다. 중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하는 그녀에게 나는 유일한 '한국 소식통'으로, 현지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그녀는 나에게 '중국 소식통'으로 지금까지 2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요즘 '한류'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나의 말에 그녀의 첫마디,

"나는 그 한류의 피해자라고!!"

중국에서 인기있는 한류 드라마.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의 김지수, ‘대장금’의 이영애, ‘인어아가씨’의 김성민과 장서희. 동아일보 자료사진.
중국에서 인기있는 한류 드라마.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의 김지수, ‘대장금’의 이영애, ‘인어아가씨’의 김성민과 장서희. 동아일보 자료사진.


중국에서 한류를 대표하는 3대 드라마 '보고 또 보고'/ '대장금'/ '인어아가씨'

나는 대학시절 바쁜 가운데 어렴풋이 '보고 또 보고'를 봤던 기억 말고는 나머지 두 드라마는 중국에 있는 관계로 제대로 본 적도 없다.

물론 중국에서도 연령대에 따라 인상 깊게 본 한국 드라마가 다르겠지만 드라마 시청률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40~50대 주부를 대상으로 한다면 아마도 위의 세 드라마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것도 한 번만 보는 게 아니다. 한 채널에만도 두세 달 간격으로 재방송을 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지방 채널에서 하는 것까지 합하면 시청률이 좋은 드라마는 적어도 대여섯 번은 반복해서 볼 수 있다. 그러니 한 드라마에 대한 인상이 얼마나 깊을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A씨는 '인어아가씨'를 제일 싫어하는 드라마로 꼽았다. 그녀의 결혼을 성사시킨 것이 '인어아가씨'라면 결혼 생활 2년째의 그녀를 고부간 갈등으로 힘들게 하는 것도 '인어아가씨'란 것이다.

현지 어르신들의 향수 - '동방예의지국'의 며느리

A씨의 4년에 걸친 연애시절, 시어머니는 물론 시외할머니의 며느리감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고 한다. 시외할머니는 문화대혁명기를 몸소 겪은 세대다. 집안에 금괴를 쌓아놓고 살다시피하다가 갑작스런 문화대혁명으로 전재산을 몰수당하고 남녀노소가 평등한 시대로 변하면서 장유유서는 물론 모든 유교적 습관도 버려야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맞담배를 태우고 어른에 대한 공경이 엄격하지 않은 지금의 세대를 보면서 어르신에게 '동방예의지국'의 손자며느리만은 당신들을 과거의 향수에 젖게 하는, 또 장금이처럼 음식솜씨 좋고 인어아가씨처럼 순종하는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매번 집안 모임에서 A씨 얘기가 나왔다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드라마 '인어아가씨'였고, 추석이나 설 명절 때면 드라마에 나오는 명절이나 예의, 풍습에 관한 이야기가 레퍼토리가 됐다고 한다.

연애기간 매년 두세 번씩 큰 집안모임에 빠지지 않았던 A씨는 결혼도 하기 전에 이미 지쳐갔지만 그래도 '결혼하면 나아지겠지'하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뒤에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여전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실망하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장금이와 인어아가씨를 따라잡지 못해 엄한 드라마만 원망하고 있다고 한다. A씨왈,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막 대드는 '막장드라마'가 히트 치면 만사 해결될 텐데, 하하."

중국의 한국 드라마 현주소

A씨는 중국에 들어오는 한국 드라마 중에 소위 '막장 드라마'는 왜 없는 것인지 나에게 되물었다. 한국 드라마 수입이 급격히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소소한 가족사를 다루는 드라마가 줄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A씨에게 '가족사 드라마는 이제 식상해진 게 아닐까'라고 말하려다보니 가족사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도 거의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 드라마 팬 사이트에는 요즘 이런 글이 나돌고 있다.

일본드라마 한국드라마
변태가 많다. 왕자, 공주병이 많다.
사회문제에 대한 소재(미혼모, 불륜 등) 유전인자에 대한 소재(계부, 계모, 배다른 형제 등)
주인공이 열심히 노력하며 파이팅하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 주인공이 엄청 우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난다.
사회하층의 주인공이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하는 이야기가 많다. 모두가 공주 아니면 왕자, 혹은 공주를 만나거나 왕자를 만나 울고짜고, 첫회부터 결말이 보인다.
봤던 드라마 다시 보고 또 감동받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빨리 보고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중을 하면서 봐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봐도 된다.
죽을 병에 걸린 여주인공이 매일 웃으며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려는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린다. 죽을 병에 걸려 울기만 몇 회, 왜 아직도 안 죽을까 생각한다.
현실은 이런 거라고 일깨워준다. 모두 동화 같은 현실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해준다.

이제야 보이는 '장금이'와 '인어아가씨'의 대안

일본 드라마를 그리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수긍이 가는 게 한두 개가 아니어서 쓴웃음이 나기도,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현지인이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식사자리에서 만난 한 여학생은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를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며 지금 보고 있는 '아이리스'는 한국 드라마 같지 않다는 품평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젊은이 중에는 아직도 드라마가 방영된 다음날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는 '한국드라마 폐인'들이 적지 않다는 걸 봐도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한국의 드라마 폐인과 비슷한 패턴으로 한국 드라마 사랑을 보여준다. 각종 포털사이트에 드라마 방영 시작과 함께 티에바(貼¤, 게시판 혹은 갤러리)가 개설돼 드라마 출연자들에 대한 분석, 줄거리 예상은 물론 종영 후 이어지는 이야기에 대한 팬픽(fan fiction)까지가 이어진다.

A씨는 한국 드라마에 대해 "좀 더 많은 소재와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장금이와 인어아가씨가 한국 여성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씨의 소망에서 한류의 미래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

박정미 / jungmip@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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