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속 찡한 여운 ‘노량진 블루스’ … ‘고시공화국’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

  • 입력 2007년 4월 16일 14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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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개그콘서트’ 코너 ‘노량진 블루스’의 박휘순(왼쪽)과 임혁필(오른쪽)[임진환 기자]

10초에 한 번씩 웃겨야 하는 ‘빠른 개그 풍토’와 ‘유행어 일색’인 스탠딩 개그 프로그램에 모처럼 ‘느린 개그’가 등장해 세대를 아우르는 짠한 감동을 주고 있다. 바로 KBS 2TV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노량진 블루스’.

‘봉숭아학당’의 고시원생 ‘노량진 박’으로 등장하던 박휘순이 사사건건 부딪치던 상상 속 인물 ‘창식이 형’을 임혁필로 실체화 시켜 콤비로 진화시켰다.

‘창문 있는 방’을 꿈꾸며 방 벽에 크레파스로 창문을 그려 넣고 고시원비를 올리려 하면 혈서로 맞서는 ‘고시생들의 삶’을 개그로 보여주는 코너다.

아카펠라 그룹 다이아(D.I.A)의 멜로디를 배경으로 나지막한 박휘순의 멘트, 임혁필의 몸개그가 어우러져 고시생들의 애환과 고달픈 일상을 유머러스 하게 그려내, 웃던 시청자들을 돌연 뭉클하게 만든다. 지난 8일 첫 방송 이후 ‘포스트 마빡이’ 코너로 거론되며 호평 받고 있는 두 사람을 스포츠동아가 만나봤다.

박휘순-임혁필 ‘개성 강한 캐릭터의 쌍두마차’▼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던 육봉달’ 박휘순과 ‘세바스찬’ 임혁필의 절묘한 조합.

임혁필은 “둘이 처음 하는 코너에요. 와이프도 ‘특이한 조화’라고 갸우뚱해요. 기수 차이도 많이 나고 교집합이 될 만한 교류가 전혀 없었죠. 오히려 이런 새로움이 코너에 신선한 바람이 아니었나 싶어요. 강한 캐릭터 둘이 모였는데 아직까지는 별 나쁜 점이 없는 것 같아요. 후배지만 독특한 개그방식이나 아이디어에 깜짝 깜짝 놀라며 많이 배웁니다”라며 박휘순을 칭찬했다.

박휘순 또한 “상상 속에 존재하던 ‘창식이 형’ 캐릭터로 임혁필 선배만큼 적절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에요. 선배님이 있기에 이 코너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죠. 장수 코너로 나갈 힘이 생겼어요.”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에 따르면 처음에는 임혁필과 권진영이 아카펠라팀과 함께 신규 코너를 짜다 박휘순이 합세했고, 제작진의 수정을 거쳐 권진영이 빠지고 ‘노량진 박’과 ‘창식이 형’ 캐릭터로 재탄생하게 됐다.

“ ‘봉숭아 학당’이 끝나면서 함께 막 내린 ‘노량진 박’ 캐릭터에 대한 제작진의 아쉬움이 ‘노량진 블루스’의 탄생 배경이 됐다”는 박휘순의 말에 임혁필은 “‘노량진 박’이라는 걸출한 캐릭터가 있었기에 ‘창식’이라는 파트너도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함께 코너를 짜던 진영이한테 많이 미안하다”고 응수했다.

‘말개그’와 ‘몸개그’의 만남▼

‘노량진 블루스’에서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확실하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박휘순의 ‘말개그’와 온몸으로 망가지는 임혁필의 ‘몸개그’가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가 포인트다. 여기에 흥겨운 다이아의 아카펠라가 합세해 관객이 어깨를 들썩이며 볼 수 있는 새로운 개그 형식을 탄생시켰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그들 나름의 어려움은 없을까?

박휘순은 “코너에 대한 감독님의 애착이 대단해서 몇 번의 수정 끝에 녹화 하루 전날 대본을 확정하는 경우도 있다. 무대에서 긴 대사를 치는데 NG를 낼까봐 식은 땀을 흘린다”며 “특히 ‘웃겠지’라고 생각한 부분의 관객 반응이 없으면 상당히 당황스럽고 무대를 내려와서도 오랫동안 자책한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어느덧 ‘개콘’의 큰형님 뻘”이라는 임혁필 또한 ‘몸개그’의 어려움을 밝혔다.

“ ‘몸개그’에 대한 질타도 많죠. 분장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우기도 힘든데 말이죠. ‘식자재 개그’를 선보일 때는 ‘먹는 것 같고 장난친다’는 비난도 무수하죠. 하지만 ‘몸개그’가 수준이 낮고 ‘토크’는 수준 높은 개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슬랩스틱’처럼 하나의 장르일 뿐이죠. 휘순이가 멘트를 맡는데 제가 ‘나도 대사 좀 하자’고 요구한다면 코너가 엉망이 될 겁니다.”라고 환하게 웃었다.

이어 “저 역시 객석이나 시청자들에게 웃음이 전해질 수 있다면 내 몸 하나 망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요. 무대에 오르면 선후배가 어디 있어요. 치고 맞을 때 모두 확실해야죠. 제가 맡은 부분은 비주얼이니까요.”라며 프로근성을 드러냈다.

‘고시공화국’ 대한민국의 웃음 공감대 ‘노량진 블루스’▼

박휘순은 말한다. ‘노량진 블루스’는 시대에 역행하는 느린 개그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바로 사시, 행시, 외시, 임용 시험, 공무원 시험 등을 제외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은 넘어야 할 취업과 대입의 문턱에서 누구나 좌절하고 고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전국민의 수험생화’, ‘고시 공화국’이라는 조금은 과장된 표어 속에서 ‘노량진 블루스’의 묘한 공감대는 바로 이 부분이다.

재수하면서 3개월간 고시원 생활을 겪어본 박휘순은 “고시원은 외로운 곳이에요. 뜻을 세우고 나온 터에 일부로 친구를 만들지 않죠. 말벗이 적어지면서 순수해지는 사람들은 500 짜리 맥주 한 캔만 있어도 진지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죠. 그 분들께 힘을 드리고 싶어 연기를 하는데 직접 집필한 고시원 에피소드 책을 보내주신 변호사분이나, 개그 소재를 보내주시는 시청자들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힘을 얻고 있어요.”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랜 무명 시기를 겪었던 임혁필 또한 “대선배들이 말씀하셨죠. ‘비극을 알아야 희극을 안다’고. 웃음이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 같아요. 슬픔 속에도 잔잔히 피어 오르는 웃음이 있죠. 무명생활이 힘들었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오히려 ‘세바스찬’ 이후 1년 쉬는 동안 알아보는 사람들의 안부 인사에 무명 때보다 더 힘들었죠. 그런 시간 때문에 새롭게 준비할 수 있었고, 새 코너로 찾아 뵐 힘을 얻지 않았을까요?”

조만간 노량진이나 신림동 고시원을 찾아가 직접 그들의 애환을 듣고 시간이 된다면 실제로 체험하며 보다 공감적인 개그 소재를 개발하고 싶다는 두 사람.

‘고시원 생활이 힘들지만 힘들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보다 더욱 더 고생하고 계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라는 박휘순의 개그 멘트처럼 “웃기는 개그뿐 아니라 정서가 묻어나는 개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그들에게서 ‘슬픔이 기쁨 되는 곳’ 노량진 블루스의 밝은 미래를 봤다.

스포츠동아 이유나 기자 lyn@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화보]박휘순-임혁필 콤비의 귀환 ‘노량진 블루스’평범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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