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71곳 들여다본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직원복지에 감탄, 막 대하는 사장에 움찔, 희미한 비전에 고민

중소기업진흥공단 대학생 기자인 홍진옥 씨(왼쪽)가 충북 충주시의 전기·전자분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전문 제조업체 새한전자에서 정순일 대표로부터 회사 소개를 듣고 있다. 홍진옥 씨 제공
중소기업진흥공단 대학생 기자인 홍진옥 씨(왼쪽)가 충북 충주시의 전기·전자분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전문 제조업체 새한전자에서 정순일 대표로부터 회사 소개를 듣고 있다. 홍진옥 씨 제공
“지금까지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한 사람들이 마지못해 가는 곳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실전을 경험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다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김지혜 씨·22·여·경희대 프랑스어학과 4년)

“중소기업이 이렇게 다양한지 몰랐습니다. 대기업 입사를 고집하며 취업 준비에 반년, 1년을 보내는 것도 구직자에게는 비용인데, 그런 취업 준비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남영희 씨·23·여·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년)

○ “중소기업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중소기업 현장을 취재한 대학생 5명은 5일 “이전까지 내가 일할 회사로 중소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생각을 달리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이 8월 시작한 ‘스마일스토리知(지)’(smilestory.or.kr) 사업의 대학생 홍보기자들로, 중소기업 71곳을 취재해 청년 눈높이에서 기업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중진공은 숨은 ‘알짜 중소기업’을 골라 이 기업들의 구인공고를 소개하고 대학생 기자들이 청년 눈높이에서 기업의 생생한 이야기를 취재하도록 했다.

중소기업 17곳을 다녀온 홍진옥 씨(23·여·연세대 영어영문학과 4년)는 맨 처음 찾아갔던 강원 원주시 호저면의 디지털카메라 방수케이스 제조업체인 디카팩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사업장은 지저분하고 더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찾아간 디카팩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홍 씨는 “입사 후 6개월 이상 근속하는 직원은 모두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등 ‘직원을 키우겠다’는 전영수 사장의 마인드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남혁진 씨(25·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년)는 “중소기업이라면 으레 대기업에 비해 복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엘리베이터용 감속기 제조업체 해성산전을 본 뒤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해성산전은 구내식당과 체력단련실, 라커룸, 샤워장이 잘 갖춰져 있고 옥상에는 정원도 조성돼 있었다.

김창현 씨(24·동서대 사회복지학부 4년)는 “홍보기자단으로 활동하기 전에는 중견기업 취업을 노렸는데 지금은 중견·중소기업을 함께 알아보고 있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치열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중견·중소기업이 많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11곳을 다녀온 남영희 씨는 “전에는 중소기업이라고 하면 모두 대기업 하청을 받는 협력업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독자적인 기술을 가진 곳이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 “급여보다 성장 가능성이 더 중요”


대학생 홍보기자들에게 “당신들이 직접 살펴본 중소기업에서 ‘당장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면 응하겠느냐, 그런 회사가 한 곳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들은 “○○○사(社)가 사택이나 기숙사를 지원해주고 출퇴근 차량 편도 대준다면 생각해 보겠다”거나 “○○○사가 좋긴 한데 지금 제시하는 초봉으로는 갈 수 없다. 협상을 해 초봉을 더 받는 조건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당장 일하자면 하겠나?” 질문엔 대학생 기자들도 한동안 멈칫▼

한 학생은 “중소기업은 보통 초봉이 2300만∼2400만 원, 대기업은 3200만∼3600만 원쯤 되지 않냐”고 묻더니 “솔직히 최소한 초봉 3000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이유가 꼭 급여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는 자신이 그 회사에 들어가면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 그 회사는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懷疑) 때문에 중소기업 취업을 주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자신이 취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를 꼽아보라고 했더니 급여를 1순위 조건으로 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급여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내가 이 회사에서 성장할 수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인가’를 들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실상 사라진 만큼 언제 어떤 식으로든 이직(移職)을 하게 될 것이고, 그에 대비해 자신의 몸값을 키울 수 있는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김창현 씨는 “해외영업 일을 하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중소기업은 규모가 작아 해외영업을 신입사원에게 맡기지 않고 경력직을 뽑아 쓴다고 했다”고 말했다. 남영희 씨는 “대기업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사원의 커리어 개발을 도와주고, 보고 배울 만한 상사가 많을 것 같은데 중소기업에서는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학생은 “직접 찾은 중소기업들은 ‘우리 회사에서는 일을 빨리 배우고 진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오히려 전문성 없이 다양한 일을 하게 된다는 얘기로 들렸다”며 “기술이면 기술, 마케팅이면 마케팅이라는 식으로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는 전천후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소개에 “적성이나 희망을 반영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시키겠다는 뜻 아니냐”는 반발도 있었다.

○ “직원을 하인 부리듯 하는 태도에 움찔”

학생들은 중소기업이 고쳐야 할 관행을 꼬집기도 했다. 한 학생은 “복리후생 제도를 물었는데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이라고 답하는 기업도 있었다”며 “자기 비전을 얘기 못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나겠나”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학생은 “사원을 ‘야!’라고 부르며 하인 부리듯 고압적으로 대하는 사장을 보고 움찔했다”며 “직원을 인재로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십 년은 뒤떨어진 듯한 촌스러운 구호가 적힌 깃발이 걸린 걸 보고 정이 떨어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중소기업 취업 기피 현상을 없애기 위해 정부와 중소기업이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남혁진 씨는 “정부가 괜찮은 중소기업을 발굴해 ‘이 회사 일하기 좋다’는 점을 알리고 구직 루트도 학생들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중소기업도 스스로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진옥 씨는 “장래성 있고 기술도 뛰어난데 ‘우리는 지금 내실을 다져야지 홍보할 때가 아니다’라며 겸손해하는(?) 중소기업을 보고 안타까웠다”며 “여러 매체를 통해 중소기업 홍보가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 중소기업 사장들, 인력 구하려 밤샘 노숙까지…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