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 소급적용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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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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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연구원 과세방안 초안… 30% 넘을때 증여세 부과
글로비스-SK C&C등에 수천억대 세금 부과될듯

정부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로 생긴 이익을 증여행위로 보면서 적용 대상을 2004년 이익분까지 소급 적용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한 회사의 주가 상승분이나 영업이익에 대해 증여세나 법인세를 매기는 방식이다.

이 같은 안이 법제화될 경우 글로비스로 2조 원 이상의 부(富)를 얻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나 SK C&C로 막대한 이익을 본 최태원 SK 회장 등 상당수 대기업 총수나 자녀들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새로 만드는 법을 소급 적용해 세금을 걷는 건 헌법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실제 도입을 둘러싸고 진통이 예상된다.

조세연구원은 5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리는 ‘특수관계 기업 간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이익에 대한 과세방안’ 공청회에 앞서 4일 배포한 자료를 통해 이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기획재정부가 3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공정사회 추진회의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를 변칙 상속·증여로 보고 세금을 물리겠다고 발표한 뒤 4개월여 검토 끝에 나온 것으로, 사실상 정부 의중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재정부 김형돈 재산소비세정책관은 “조세연구원 보고서를 바탕으로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과세방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지배주주(본인, 배우자, 친척) 지분이 3∼5% 이상인 회사와 그룹 계열사 간 거래비중이 30% 등 일정비율을 넘으면 일감 몰아주기를 증여 행위로 보고 과세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는 오너 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수혜기업에 한해 증여세를 매기자고 7월 주장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안보다도 더 강력한 기준이다.

이 방안을 발표한 한상국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라는 증여 행위가 세금 없이 부를 이전하는 편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다만 대기업 내 정상적인 내부거래를 감안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우에만 과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경부가 검토 중인 과세 방식은 △1안 주가상승분, 영업이익에 증여세 부과 △2안 영업이익에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3안 수혜기업에 법인세 추가과세 등 세 가지다. 증여세 과세안은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 매출이 오르면 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다. 변칙 상속·증여에 엄격히 세금을 물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안대로라면 현대차 자회사인 글로비스는 대주주인 정의선 부회장 지분이 31.88%이고, 매출액 중 현대차그룹 비중이 90%에 육박하기 때문에 과세대상에 해당한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2001년 글로비스에 29억9300만 원을 투자해 10년 만인 올해 1조8967억 원의 투자수익(배당금 제외)을 냈다. 조세연구원이 내놓은 증여재산가액 계산 기준을 적용하면 정 부회장은 글로비스에 대해 상장 시점인 2005년 이후로만 따져도 증여세로 5105억 원을 내야 한다. 가장 큰 쟁점은 소급적용. 조세연구원은 세 가지 과세방식 모두 증여세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된 2004년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증여로 이익이 생기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게 2004년 법개정 취지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소급적용이 아니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견해”라며 “공청회에서 더 많은 의견을 들은 뒤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있어온 사실상의 편법 증여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것은 ‘공정과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재정부의 논리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세금을 피해간 변칙 증여를 엄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소급입법을 금지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과세규정이 2004년에 마련된 만큼 편법적인 부의 상속을 막기 위해서 소급 적용이 반드시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2004년 이후분에 대한 소급 적용은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고 반대했다.

주가 상승분에 세금을 매기는 게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주가가 올라도 팔지 않는 이상 실제 손에 쥐는 소득은 없는데, 여기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또 주가를 움직이는 요인은 국제금융 시황, 업황 등 다양한데 ‘일감 몰아주기=주가 상승’이라는 단순화된 공식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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